잡지에서 읽은 시

집으로 가는 길/ 박종해

검지 정숙자 2020. 2. 14. 03:20



    집으로 가는 길


    박종해



  서점 한 구석에 나의  시집이

  무덤덤하게 꽂혀 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구석진 곳이다.

  나는 소외 받고 있는 나의 시집을 빼어 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머무는

  판매대에 슬쩍 놓아두었다.


  그리고 몇 주일이 지났다.

  내가 그 서점을 지나가려다가

  나의 시집이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해서 들렀는데

  나의 시집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그새에 팔렸나 보다 생각하다가

  혹시나 싶어 둘러 보았는데

  나의 시집은 도로 그 구석진 곳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주인을 불러 "내 시집은 왜 구석진 곳에만

  꽂혀 있어야 하나" 하고 따져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돌아서려는데

  나의 시집이 왠지 측은해졌다.

  나는 나의 시집을 내 스스로 샀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고 속삭였다.

  "여기 있을 곳이 못 된다. 집으로 가자"


  거의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되지 않아

  하숙집에 붙박혀 지내던 일이-.

  그때 시골에서 아버지가 오셨다.

  "얘야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집으로 가자

  뭣을 한들 못살겠나"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

  노을이 시집처럼 펼쳐진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집을 포켓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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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문학』 2020-상반기 호 <신작시 특집> 에서

   *  박종해/ 1980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탕비누방울』외 10권, 『시와 산문선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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