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박종해
서점 한 구석에 나의 시집이
무덤덤하게 꽂혀 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구석진 곳이다.
나는 소외 받고 있는 나의 시집을 빼어 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머무는
판매대에 슬쩍 놓아두었다.
그리고 몇 주일이 지났다.
내가 그 서점을 지나가려다가
나의 시집이 어떻게 되었는가 궁금해서 들렀는데
나의 시집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그새에 팔렸나 보다 생각하다가
혹시나 싶어 둘러 보았는데
나의 시집은 도로 그 구석진 곳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주인을 불러 "내 시집은 왜 구석진 곳에만
꽂혀 있어야 하나" 하고 따져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돌아서려는데
나의 시집이 왠지 측은해졌다.
나는 나의 시집을 내 스스로 샀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고 속삭였다.
"여기 있을 곳이 못 된다. 집으로 가자"
거의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되지 않아
하숙집에 붙박혀 지내던 일이-.
그때 시골에서 아버지가 오셨다.
"얘야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집으로 가자
뭣을 한들 못살겠나"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라
노을이 시집처럼 펼쳐진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집을 포켓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당문학』 2020-상반기 호 <신작시 특집> 에서
* 박종해/ 1980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탕비누방울』외 10권, 『시와 산문선집』이 있음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기도/ 곽진구 (0) | 2020.02.14 |
---|---|
엉겅퀴꽃/ 송찬호 (0) | 2020.02.14 |
이슬의 생애/ 박종해 (0) | 2020.02.14 |
의자가 있는 골목/ 황상순 (0) | 2020.02.13 |
겨울비, 그 후/ 박해성 (0) | 2020.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