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의자가 있는 골목/ 황상순

검지 정숙자 2020. 2. 13. 15:58



    의자가 있는 골목


    황상순



  의자에 앉는 것과

  의자에 앉지 않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으로 구분한다

  맞는 이론이다

  아득한 초원을 질주하는 들소 떼

  나는 진즉 사람으로 구분되었으므로

  태초에 의자를 만든 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평생을 서서 먹이를 구하던 차 씨

  의자에 앉아서 종일토록 택시를 몬다

  어디로 모실까요

  날씨 많이 추워졌지요

  사람 아니었던 시절 까맣게 잊었으니

  차 기사, 참 사람 좋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외진 골목길에

  두 팔로 땅을 짚고 선

  엉덩이 터진 의자 하나 길을 막고 있다

  다 왔습니다, 그만 내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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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2월호 <신작시 # 2> 에서

   *  황상순/ 199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된 약속』『비둘기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