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병국_ 떠돌이꾼과 산책자, 미아의...(발췌)/ 물에 뜨는 돌 : 고주희

검지 정숙자 2020. 2. 2. 02:18



    물에 뜨는 돌


    고주희



  표류기에나 나올 법한 배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온갖 희한한 보물들이 거리 좌판에 쏟아지고

  햇빛은 녹슨 금화처럼 뒤척거렸다


  참 이상도 하지,

  마음이 뜨지 못하도록 들돌로 척추를 눌러놓았는데

  곡진한 허기처럼 물에 뜨는 검은,


  빠져나올 노래와 젖지 않는 책 한 권쯤 가졌어도

  수영하는 법을 모르는 내가

  미래의 어디까지 떠밀려갈 수 있을까


  앞과 뒤 옆과 옆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조망이지, 리듬에 따르면

  저글링에 능한 어둠조차 낮에는 안색을 바꾸니


  사랑이라는 횡포를 생각한다

  검은색은 고통을 감춰준다


  믿기지 않는 우연을 멈추고

  이제 푸른 눈의 당신도 기억에서 지운다


  정오의 권태로움,


  당신과 나라는 비밀투성이가 만나

  그해 가장 가벼운 몸무게를 얻게 되었지만


  만져보면 스스로 흘러넘치는

  얼굴만 무성할 뿐이다

    -전문-



  ▶ 떠돌이꾼과 산책자, 미아의 삼위일체_ 표류하여 도달하는 삶의 장소(발췌)_ 이병국/ 시인, 평론가

  아이에 의해 부수어진 배는 '지하 방'의 '빙하기'를  버티는 데 쓰였다. 이 '버팀'은 방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전회하여 의미화하였으나 그것이 불안을 상쇄하고  삶의 정박을 이끌지는 못했다. 부수어진 채 표류하는 배는 「물에 뜨는 돌」의 시적 주체의 시선에 닿아 맺힌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들돌로 척추를 눌러놓"아도 가라앉지 못하고 마음이 부유하게 만든다. 적극적 행위를 무모한 노력으로 전락시키는 힘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곡진한 허기"의 실체를 밝혀야만 한다./ 채울 수 없는 결핍인 '허기'는 "당신과 나라는 비밀투성이" 서로를 강제하는 "사랑이라는 횡포"에서 연유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고통을 감춰"주는 '검은색'의 표상을 갖는다.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낭만적 환상을 전유해 상징적 질서에 서로를 편입시키는 행위이다. 우연이 필연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사랑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상상적 환상과 이를 뒷받침해줄 상징적 세계가 관계 속에서 접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실재의 형태로 결핍을 야기할 뿐이라서 고통의 향유만을 불러온다. 이는 자기기만의 방식으로 관계의 가능성을 속삭이지만 "만져보면 스스로 흘러넘치는/ 얼굴만 무성"하게 한다. 기이하고 불가해한 사랑을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결핍된 공간이 정서적 충만함의 장소로 전화되기는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집요하고 추구되어야 하는 이유는 "수영하는 법을 모르는 내가/ 미래의 어디까지 떠밀려갈 수 있을"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믿기지 않는 우연을 멈추고" 그 끝까지 자신을 표류하게 내버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p. 시 70-71/ 론 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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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 2019-겨울호 <집중조명/신작시/ 시평> 에서

  * 고주희/ 2015년 『시와표현』으로 등단

  * 이병국2013년《동아일보》로 시 부문 &,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이곳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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