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중심에 관해/ 허연

검지 정숙자 2020. 2. 4. 01:36



    중심에 관해


    허연



  중심을 잃는다는 것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회전목마가

  꿈과 꿈이 아닌 것을 모두 싣고

  진공으로 사라진다는 것


  중심이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가장 막막한 일이다


  어지러운 병에 걸리고서야

  중심이 뭔지 알았다


  중심이 흔들리니

  시도 혼도 다 흔들리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내게도 중심이 있어서.

  시소처럼 살았지만

  튕겨 나가지 않았었구나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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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 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허연/ 1991년『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오십미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