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룰로의 열쇠*
방지원
중세 화가들은 검은 커튼 뒤에 신을 그려 넣었지
몇 겹인지 모르는 커튼 뒤의 얼굴이
늘 이쪽을 향하도록 했어
오랜 시선에 찔려 피 흘리는 대상이 사라지면
다시 그 자리에 세울 인물을 골똘히 찾지
그림을 그리면서도
신의 속마음이 궁금한 화가의 손끝
나중엔 자신이 그린 검은 신의 눈빛에 본인이 찔릴까
늘 그 열쇠를 만지작거리지
자 힘껏 당겨봐
순식간에 지붕이 무너져 하늘이 보이면
두렵던 신의 모습을 환히 읽을 수 있을 거야
지붕 없는 세상은 평등하겠지만
신의 눈을 피할 곳은 어디든 없어.
-전문-
* 트룰로의 열쇠: 이태리 동화마을 알베르벨로 전통가옥의 고착제 없이 돌을 쌓아올린 뾰족한 지붕. 천정 한가운데 열쇠만 제거하면 지붕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음.
▶ '트룰로'의 세상 속으로(발췌)_ 전해수/ 문학평론가
창조적인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 디자이너의 예술적인 손길마저도 신의 창조적인 안목이라는 듯 「트룰로의 열쇠」는 "신의 눈"으로 들여다본 열쇠구멍을 주목한다. 물론 바늘구멍보다야 당연히 클 것인 이 열쇠구멍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또렷한 신의 검은 눈을 환기시킨다./ 이처럼 궁금함과 두려움이 상충되는 "트룰로의 열쇠"를 통해 "트룰로"는 (열쇠의) 유혹과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열쇠를 "힘껏 당겨" 보라 권하는 신神의 속삭임을 들은 화가의 손끝은 "지붕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주저없이 달려 나아간다. 그런데 "순식간에 지붕이 무너져 하늘이 보이면" 과연 "지붕 없는 세상"이 "평등"하리라는 믿음은 이루어질까. 의심을 품은 자들은 장난기어린 "신의 모습을 환히 읽"으려는 듯 화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커튼 뒤의 신의 얼굴"을 목도하고 있다. 그런가? "신의 눈을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서 예술가의 두려움은 커져간다. "자 힘껏 당겨보"라 재촉하던 유혹의 신이 "커튼 뒤에" 숨어 "늘(세상의) 이쪽을 향"한 시선을 고정하고 있기에 세상을 지켜보는 "신"의 열쇠구멍 속 "눈을 피할 곳은" 정녕 없다.(p.18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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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2019-겨울호 <신작 소시집/ 작품론> 에서
* 방지원/ 1999년『문예한국』으로 &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짝사랑은 아닌가봐』『사막의 혀』등
* 전해수/ 문학평론가, 평론집『목어와 낙타』『비평의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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