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들
이화은
늙은 가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지금쯤 즐겁게 차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웃을 때도 표정이 없다 없는 표정으로 울기도 한다
아무도 그 얼굴에서 예감을 읽을 수가 없다
천기가 누설 되어야 비가 내리고 풀이 자라는데
보안이 철저한 저 표정에게 어떤 화려한 무기도 이길 수가 없다
무표정은 그녀의 국가이고 그녀의 막강한 자산이다
무표정이 번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우리가 열심히 겨울을 읽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봄이 왔다
줄장미의 붉은 이빨이 벌써 폭염을 씹고 있다
그녀의 무표정 때문이다
이빨을 드러낸 맹수보다 밀림의 우거진 적막이 더 무서운 이유다
젊은 엄마의 죽음 앞에서 활짝활짝 웃는 딸의 표정을 읽을 수도 해석할 수도 없었다
표정에도 해설과 번역이 필요한 시대이다
한국의 베란다에서 여러 해 쉬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서양란의 표정을
오늘 비로소 읽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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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이화은/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절정을 복사하다』『미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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