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백인덕_ 말의 복원과 세계의 재편(발췌)/ 어둠이 된 그녀 : 장종권

검지 정숙자 2019. 12. 31. 13:14

 

 

<2019, 제12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자 근작시> 中

 

 

    어둠이 된 그녀

 

    장종권

 

 

  스스로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소녀가 있었다. 그 후로 아무리 어둠을 마셔도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다. 동굴 속 소녀는 어둠에 그녀의 꿈을 섞어 먹었고, 어둠에 버무려진 꿈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소녀가 삼킨 어두운 꿈은 보이지 않는 별들의 이름으로 태어났다. 소녀는 별들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누구도 소녀를 하늘이라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어둠에 꿈을 섞어 먹으며 행복했다. 행복하다고 믿었다. 너무 행복해서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스스로 동굴이 되었다.

  -전문-

 

 

  * 심사위원: 문효치  김추인  이채민 

 

 

  ▶ 말의 복원復原과 세계의 재편再編 (발췌)_ 백인덕/ 시인

  장종권 시인의 '기획'은  합리적 추록과 실험적 증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거나 어둡게 작용하는 시원적, 시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묘한 신호'에 대한 시적 탐구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소녀"가 "별들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누구도 소녀를 하늘이라 하지는 않는" 이 세계를 몸에 가장 가까운 기호로 다르게 발화함으로써 흔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너무 행복해서 스스로 어둠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존재 기투企投가 아닌가.(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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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19-겨울호 <제12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자/ 근작시/ 작품론> 에서

  * 장종권/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5년『현대시학』에 추천 완료, 시집『누군가 나의 방문을 두드리고  갔습니다』『호박꽃나리』『전설은 주문이다』등, 1994년 세계명시선 엮음『너를 위해 내 사랑아』, 1997년 장편소설『순애』(전2권), 2018년 창작집『자장암의 금개구리』 

  * 백인덕/ 1991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단단함에 대하여』『잠적의 우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