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빙륜(氷輪)*/ 유미애

검지 정숙자 2019. 12. 25. 14:00

 

 

    빙륜氷輪

 

     유미애

 

 

  북을 칠까요?

 

  설인의 발소리가 그림자를 잘라 먹는 밤, 울림도 없이 겨울 달이 가네요 나는, 얼어붙은 풀씨를 날리며 저 달을 떠나온 이름, 변방의 고리를 돌며 단 한 번의 만월을 꿈꾸는 사람

 

  길 잃은 나를 깨운 건 쉼 없이 바퀴를 돌리라는 말, 무릎에서 얼룩뱀이 울어요 그림자를 빼앗긴 자들이 제 몸에 구덩이를 파고 흙을 모으는 밤

 

  바람의 반대편을 달리면 첫 달에 닿을 수 있겠지요? 기린초 여뀌 달개비, 발목이 비린 씨족들 모여 해죽해죽 마늘 까고 쑥을 캐며 두고 온 신화 속으로 깊어지겠지요?

 

  붉은 바퀴와 흰 바퀴가 교차하네요 극지의 저녁과 사막의 아침을 돌아온 오늘은 검은 구덩이에 엎드려 무른 꽃씨나 고르고 싶은데, 뱀 울음소리 커져 가요 유빙들이 헌 신발을 푸덕이는 밤

 

  이 눈물이 달의 심장을 녹일 때까지, 캄캄한 씨눈들을 꽃 피울 때까지, 피리를 불까요?

    -전문-

 

   * 빙륜: 얼음 바퀴, 차고 맑게 보이는 둥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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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유미애/ 2004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손톱』『분홍 당나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