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문종필_Say it to me now(발췌)/ 어쩔 수 없는 짝수 : 황미현

검지 정숙자 2019. 12. 25. 13:16

 

    어쩔 수 없는 짝수

 

    황미현

 

 

  어젯밤엔 둥근 지구 밖에서

  구르지 않는 꿈을 꾸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한 마리 새처럼 내려앉고

  깃털과 뼈를 모두 버리고 사라지는 꿈

  둥근 것들에게도 양쪽이 있다는 것을 뒤척이다 알았다.

  모든 숨결은 짝수와 홀수로 견디다 그중 하나를

  택해 사라진다는 것도 잠결에서 들었다.

 

  최초의 셈법은 홀수에서 시작되었을 것, 홀수로 자전하고 공전한다. 전자와 후자들은 짝수에게 버림받은 것들. 하나의 몸짓으로 나비의 양 날개와 뱀의 두 갈래 혀 날개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새들은 홀수의 열매들로 배를 채운다.

 

  죽은 새를 뒤적이다 본 뼈는

  홀수까지 세다 말았다.

  그렇다면 은륜의 중심에 뜨는 달의 뼈는 어떨까.

  몸이 둥근 것들도 자주 넘어지는 걸 보면

  어느 방향엔 기우뚱 기우는 홀수가 있다는 뜻일까.

 

  한밤의 고양이 울음소리는

  홀수인 것이 분명하다.

   -전문-

 

 

   ▶ Say to me now(발췌)_ 문종필/ 문학평론가

  이 시는  나에게 한 그루의 커다란 감나무를 상기시켰다. 내 키보다 작았던 작은 묘목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이사 오기 전에 심었던 작은 묘목을 떠올리게 해준다. 작은 나무는 중심을 잡으며 하나의 가지로 뻗어나가 두 갈래로 이어졌고 다시 한 가지로 이어지면서 두 갈래로 뻗어나가는 반복의 반복을 경험했다. 감나무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가로로 세로로 늘려 나갔다. 만지고 쓰다듬고 우두커니 응시했다. 오랫동안 나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나무의 살결과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에 사는 내가 크게 깨달은 것 중에 하나다. 그 이후로 나무를 함부로 만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나무의 양손에는 수많은 홀수들이 매달려 있었고 날씨가 좀 더 추워지자 홀수들은 하나둘 땅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와 나는 이 홀수들을 주워 담기 위해 빗자루로 때리고 흔들었다. 기분 좋게 떨어진 홀수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모든 숨결은 짝수와 홀수로 견디다 그중 하나를/ 택해 사라진다는 것도 잠결에서 들었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나무의 성장을 몽상했다. 이것은 화자가 "둥근 지구 밖에서" 꿈을 꾸며 깨달은 것 중에 하나다. 이 깨달음은 감나무뿐만 아니라 나비의 양 날개, 뱀의 혀로 확장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상념을 쫓아다니며 짝수와 홀수로 변모되는 지금, 이곳의 자연계를 상상하게 만든다.(p.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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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9-겨울호 <시작이 주목하는 젊은 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황미현/ 2019년『시작』으로 등단

  * 문종필/ 2017년『시작』으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