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색깔 속의 나
차주일
색깔을 선택하지 못한 말이 표정에 잠복할 때
주먹을 펼쳐보네.
손가락 마디마디 쌓여 있는 여러 색깔을 보네.
주먹은 연대기로 혼잣말을 섞는 팔레트.
먼 곳의 모음; 혼잣말로 얼굴을 칠해 보네.
무표정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고
발성되지 않는 감정을 움켜쥐고 고뇌하는
짐승이 보이네.
모든 처음엔, 주먹 쥔 팔 같은 모음이 있다네.
팔꿈치를 세우고
주먹의 위치에 떠도는 생각을 고정한 자세가
자모음을 결합한 글자로 보일 때
얼굴로 색깔을 고르는 종족이 탄생했다네.
혼잣말은 혼합색으로 떠돌기 시작했다네.
어떤 감정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그가 왜, 내 주먹을 선택한 것인지,
왜, 내 자세를 통해 나를 우리로 혼합하려는 것인지.
나는 붉은 색깔의 양을 재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어서
어떤 색깔이 표정에 이르는지 구별할 수 있네.
우리는 말하는 자세를 기르기 위해 주먹을 쥐고 펴고
지금도 변함없이
감정의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손을 방랑케 하네.
심장에 정착한 손이 혼잣말을 경작하였다네.
맥박에서 사람이 탄생했다는 풍문을 오래 만지면,
먼 곳에서 붉은 색깔을 고르며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된, 한 짐승의 표정을 더듬어
어떤 색깔의 배율을 알아낼 수 있다네.
완성이 없는 색깔 속에는
신神만 해석할 수 없는 미립자 하나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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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차주일/ 2003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냄새의 소유권』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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