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모래의 도시/ 김춘식

검지 정숙자 2019. 12. 25. 03:31

 

 

    모래의 도시

 

    김춘식

 

 

  처음 백 년 사이 그 모래의 도시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멀리서 구름의 그림자가

  사막의 언덕을 얼룩지게 하는 동안,

  천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모래는,

  그 도시의 하천에서

  즐거운 물소리를 흉내 내며 흘러간다

 

  물기 없는 도시에선

  한 통의 모래를 뒤집으면

  천년의 시간이 스쳐간다

 

  - - - 어느 때인가,

 

  외지에서 찾아온 이방인이

  한 통의 모래를 실수로 넘어뜨려,

 

  한 줌 모래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모래 도시의 성지기는

  빈 모래 통 속에, 그를, 다시

  얌전히 채워 넣었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에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크고 작은 모래시계가

  길을 따라 여기저기 길게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방금 채워진 모래 통은

  길고 투명한

  유리관처럼 생겼는데, 이 성의 현자는

  모래의 작은 알갱이들이

  각각 자신만의 숫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절대로 중복되지 않는 고유의 숫자들이

  긴 유리관 안에서 언젠가

  누군가의 실수로 엎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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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김춘식/ 1992년《세계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평론집『불온한 정신』, 연구서『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외, 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