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대한_ 에케 호모Ecce homo(발췌)/ 풍경 엿보기 : 김추인

검지 정숙자 2019. 12. 25. 03:16

 

    풍경 엿보기

    -호모 미디어쿠스(homo mediacus)*

 

    김추인

 

 

  "이제 시작일 뿐인 걸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의 말이다**

 

  고요하다 말이 사라졌다 싶게 열에 열이 다 15도쯤 고개를 꺾고 앉았거나 섰다

  그 속이 우물 속인 듯

  그에게 길을 묻는 듯

  제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누군 영화를 보고

  누군 맛집을 찾고

  누군 사랑을 구걸 중이고

  누군 욕설을 날리나 보다 입술 앙다문 것이

 

  늘 보던 지하철 풍경을 스캔하다 혼자가 멋쩍었던지 저도 가방 속을 뒤적뒤적 손전화를 꺼내 들고 메모를 한다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이미 사통팔달의 인공지능에 경도되는 형세, 시간의 좌표가 가파르게 차오르고 있다 가상현실 속으로 발이 빠진 호모 사피엔스, 장미 꽃밭이 늪임을 따지지 못한다

  우리는 제 발로 그들의 실험대 위로 올라가 표 안 나게 생체실험을 받는 건 아닐까

 

  누구도 기계 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화면 속은 신 유토피아다

    -전문-

 

 

   ▶ Ecce homo(발췌)_ 조대한/ 문학평론가

  이 시편에 그려지는 풍경은 우리가 "늘 보던 지하철 풍경"인 듯싶다.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있는 사람들 모두 고개를 15도 정도 숙이고 손안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호모 미디어쿠스(homo mediacus)'라는 제목에 걸맞게, 지하철을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작은 미디어 화면에 접속하여,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사랑을 구걸하기도 한다. 150만 년 전에 활동했던 인류의 조상은 어렵사리 제 허리와 목을 곧추세웠다는데, 지평선 너머의 하늘 대신 손안의 화면을 향해 고개를 숙인 우리들은 다시 진화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일까. 혼자서 고개를 들고 멀뚱멀뚱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겸연쩍었던지, 시인은 가방을 뒤져 같은 도구를 꺼내 들고 이내 풍경 속으로 녹아들며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현 인휴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상상력'을 꼽는다. 꿀벌이라든가 돌고래라든가 하는 다른 종의 동물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정보를 전달하긴 하지만, 직접 보거나 감각하지 못한 것들을 진짜처럼 상상하여 전달할 수 있는 종은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뿐이라는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신화를 만들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풍경을 그리며, 우주 너머의 별과 자신의 운명을 겹쳐 놓는 그 상상력이 인류가 쌓은 진취적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물질문명을 단순하게 비판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잠재력을 한정하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우려에 가깝지 않을까.  수많은 상상의 지반과 자유로이 접속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의 손에 들린 달콤한 "장미 꽃밭"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좀먹는 "늪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한없이 그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다.(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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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9-겨울호 <오늘의 시인/ 작가론> 에서

  * 김추인/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오브제를 사랑한』등

  * 조대한/ 2018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