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음이 길어질 때
진혜진
포도에서 만납시다
머리와 어깨를 맞댄
돌담을 돌면 포도밭이 있다
맛이고 흔적인
우리의 간격은 포도송이로 옮겨가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지지대를 타고 몸을 쌓는다
씨를 품는다
우리는 서로 기댄 채 손끝이 뜨거워지고
포도는 오래 매달릴수록 그늘의 맛이 깊어진다
입꼬리 올린 갈림길마다 가위눌린 꿈에서
쓴맛이 돈다
포도는 입맞춤으로 열리고 선택으로 흩어진다
바둑판 위에서 빈집을 지키는
흑백의 돌처럼
우리는 내려올 수 없는 온도
피가 둥글어진다
언젠가 통화음이 길어졌을 때
그것이 마지막 고별이라는 걸 알았고
덩굴인 엄마가 욱신거려
그해 포도씨는 자꾸만 씹혔다
깨물어 버릴까
한 팔이 눌리고 한 다리가 불면인 잠버릇이 생긴 곳
자유로를 지나 수목장 가는 길 포도 알맹이를 삼킨다
하나의 맛이 두 개의 흔적을 낸다
단단히 쌓은 탑을 나는 한 알 한 알 허물고 있다
탑이 물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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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2019-겨울호 <POSITION ① 블라인드 시 읽기/지난호의 시인_자선 대표시>에서
* 진혜진/ 2016년 《경남신문》 《광주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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