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나무들
김건영
그때 신은 너무 어려서 많은 실수를 했다
차마 불태울 수는 없어서 잊어버린 일기장처럼
남겨진 사람들은 그때부터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죄의 이름들이 밤하늘에 가득 떠올랐고
금기는 선분처럼 자유로왔다
지붕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되었다
걸어다니는 나무들과
한없이 우는 물고기들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음 생에 수림의 일부가 되기 위해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벌레를 죽이면 벌레가 된대요
그러면 신을 죽여야겠구나
사람이 되고 싶으면 사람을 죽이고
나는 이 세상이 무서우니 더 무서운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아프니 세계도 아파야 한다
착한 사람들이 잘하는 건 사라지는 일이다
더 착한 사람들만 남겨두고
우리는 책과 지폐를 맞바꾸고
원인보다 결과는 반대로 말한다
그 사이에 언제나 나무들이 병정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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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2019-겨울호 <POSITION ④ 신작시>에서
* 김건영/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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