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휘청거리는 강

검지 정숙자 2011. 12. 20. 20:07

 

   휘청거리는 강

 

     정숙자

 

 

  어디선가 뭔가 깨지는 소리가  튄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죠

  아무리 애써 살아도 제멋대로 꼬이고 말죠

  그래도 우린 새파랗게 끌어야 하죠

  ‘끊임없이’와 ‘뜨겁게’와 ‘매순간’과 싸워야 하죠

  인생은 그뿐이죠 인생은 그뿐

  이죠

 

  캔서4기

  어이없는 캔서4기

  느닷없이 하염없이 수긍을 강요하는 캔서4기

  내 어린 시절 학비를 대겠다고

  가르쳐야 된다고 부모님 설득

  한 잎 풀뿌리의 생애를 일찌감치 수정하고 수식하고 급기야

  고문하기 시작한 우리오빠

  (대장암+간암)×4기

 

  고속버스 의자에 꽂혀 파르르~ 파르르~ 수평을 고르는 생수. 햇살이

털어도 뭣 하나 거리낄 것 없는 페트병 속의 물. (저건 필시 하늘의 피

일 것이다. 하늘의 피만이 저리 맑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산뜻하

고 또한 깊거나 둥글 수도 있는 저것은) 문병 길, 갚지 못한 은혜가 먼

산에 섞여 단풍 질렀네. 추수 끝난 벌판을 우우우 떠돌며 타네.

 

  마구 자라는 언어들

  전지하고 싶지 않은 오늘은

  ((그렇게나 맑은 피를 먹고 나는 뭘 했나. 온갖 걸 씻고, 닦고, 심지어

는 엎지르면서 도대체 무얼 얻었나. 어디에, 누구한테 갚지 못한 은혜

를 빌어야 하나)) 고속버스는 페트병과 함께 달리고, 파르르~ 파르르~

반 토막 잘린 생수는 내 눈썹을 자꾸 갈기고.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나무약사여래불……

 

  인생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지만

  아무리 애써 살아도 제멋대로 꼬여들지만

  그래도 우린 새파랗게 끌어야 하죠

  ‘끊임없이’를 ‘뜨겁게’를 ‘매순간’을 익혀야 하죠

  인생은 그뿐이죠 아니죠 인생은 그뿐 아

  니죠

 

 *『예술가』2011-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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