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해외 효도여행/ 공광규

검지 정숙자 2019. 12. 1. 03:06

 

  혼자 효도여행

 

  공광규

 

 

오늘이 음력 구월 스무이틀

아버지 어머니 함께 모시는 제삿날

제주인 내가 집에서 멀리멀리 떠나와 있어

자카르타 THE 101 호텔 1701호

이슬람 사원과 지하철이 내다보이는

검은 대리석 식탁에

인니 농부가 지은 흰 쌀밥을

산적 대신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나물 대신

감자와 야채를 섞은 가도가도 샐러드를

잡채 대신 국수야채볶음을

과일 대신 토마토와 오이 조각을 올려놓고

와인을 부어놓고

위패를 흰 종이에 써서

깨끗하고 흰 의자에 모셨다

부모님은 돌아가셔서야

처음 해보는 해외여행이고

나도 처음 모셔보는 해외 효도여행이다

이런 제사도 나쁘지 않다

아잔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훤한 방에서 하루 주무시고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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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9년 11-12월호 <집중 조명>에서

 * 공광규/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담장을 허물다』『파주에게』외, 산문집『맑은 슬픔』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