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랜 기후
박민서
통조림 속을 흔들어보면
담장을 달리는 장미의 함성과
사과나무가 있는 정원과 그리다 만
집의 설계도가 섞여 있다
흔들면 흔들리는 것끼리 부딪쳐
모퉁이가 찌그러진 흔적
오래 두고 먹을 날이 있기는 할까
무균실이 쏟아질까
중력을 꽉 닫는다
어딘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상흔은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공기다
뚜껑을 따면 찌그러진 맛이 날 거라 여기지만
그건 통조림의 안쪽이 물고 있는 연명이 아닐까
찌그러진 곳이 유일한 기둥인 듯
흔들림에도 오랜 기후가 끌려 나온다
살균된 관습은 굴려가는 관습
빈 깡통은 더 요란한 관습으로
무한을 향해 간다
내려야 할 정거장이 사라지듯
유통기한 지워진 날들이 오랜 기후에 갇혀 있다
-전문-
▶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에너지(발췌)_ 전철희/ 문학평론가
시인이 "유통기한 지워진 날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세상에서 "유통기한"이 없는 영속적인 것이 존재할까. 이것은 사실 종교적인 질문인데, 이 작품이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일차적으로 세계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인식을 펼쳐놓은 이후에 그것을 벗어난 "오랜 기후"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즉 그는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이 그린 것을 찾겠다는 결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p-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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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9-겨울호 <미학적 통증과 사유/ 신작시/ 작품론> 中
* 박민서/ 2019년『시산맥』으로 등단
* 전철희/ 2010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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