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사 천수관음
류지남
우리 동네 절집엔
한 손으로 합장 인사를 하는 이가 산다
빈손은 오래 전 하늘에 묻었다 한다
가슴 앞에 한 손을 척 세우면
영화 속 검객의 인사법처럼 멋스럽기도 한데
악수 나누다 보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저 한 손으로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장작을 패서
고집쟁이 스님의 방구들을 뎁힌다
부처님 오신 날
호루라기 반주에 맞춰 한 손이 춤을 추면
차들은 모두 순한 아이가 된다
절집 주위엔 구절초가 천지인데
천 송이 만 송이 꽃이 저 손끝에서 자라나
가을 하늘을 하얗게 떠받친다
한 손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싸리비가 안쓰러워
절 마당 쪽을 슬쩍 비껴가는 겨울눈도 있다
우리 동네 구절산 구룡사에는
빈 소매 속에,
천 개의 손을 숨기고 사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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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문학』2019-가을호 <시>에서
* 류지남/ 1991년『삶의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몸의 봄』『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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