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구룡사 천수관음/ 류지남

검지 정숙자 2019. 11. 22. 00:57

 

    구룡사 천수관음

 

    류지남

 

 

  우리 동네 절집엔

  한 손으로 합장 인사를 하는 이가 산다

  빈손은 오래 전 하늘에 묻었다 한다

 

  가슴 앞에 한 손을 척 세우면

  영화 속 검객의 인사법처럼 멋스럽기도 한데

  악수 나누다 보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저 한 손으로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장작을 패서

  고집쟁이 스님의 방구들을 뎁힌다

 

  부처님 오신 날

  호루라기 반주에 맞춰 한 손이 춤을 추면

  차들은 모두 순한 아이가 된다

 

  절집 주위엔 구절초가 천지인데

  천 송이 만 송이 꽃이 저 손끝에서 자라나

  가을 하늘을 하얗게 떠받친다

 

  한 손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싸리비가 안쓰러워

  절 마당 쪽을 슬쩍 비껴가는 겨울눈도 있다

 

  우리 동네 구절산 구룡사에는

  빈 소매 속에,

  천 개의 손을 숨기고 사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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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문학』2019-가을호 <시>에서

  * 류지남/ 1991년『삶의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몸의 봄』『밥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