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할머니가 있는 바니타스/ 박재연

검지 정숙자 2019. 11. 22. 01:22

 

    할머니가 있는 바니타스

 

     박재연

 

 

  무릎 위에 해골을 안고 눈을 맞추는 백발이 있다

  시력은 없고 구멍만 웅숭깊은

  말은 없고 치아만 생생한

  검은 해골의 턱뼈를 어루만지는 백발이 있다

 

  쪼그라든 몸통에 울음이 고이고 있다

  고인 울음이 부풀고 있다

 

  부푸는 백발을 옆 눈으로 보는 중년이 있다

  뒷짐을 지고 비스듬히

 

  1997년 망월

  광주시립묘원 제3묘역에 묻혔던 '이름 없는 시민'이 발굴되는*

  할머니가 있는 바니타스화

 

  해골 아래 책을 받쳐주고 싶다

  시계와 만년필과 꽃을 그려주고 싶다

  부활과 영생의 상징인 옥수수와 월계수 가지를 그려준다면

  그것은 한 편의 완성된 바니타스화

 

  책과 지도와 악기도 없이

  지갑과 반지와 술잔도 없이

  해골이 발굴되고 있다

 

  청소차와 손수레에 실려 와 아무렇게나 묻혔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깊은 동굴이 백발을 흡수하고 있다

  동굴이 헤쳐지고 있다

    -전문-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579-1, 카메라 삼성SM-AS20K, whflro FI.9, 초점거리 3.600, 플래시 사용 안 함, 화이트 밸런스 자동, ISO 2001, 노출시간 1/20s (블로그주: 관련 사진은 p-135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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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문학』2019-가을호 <시>에서

  * 박재연/ 2004년《강원작가》로 등단, 시집『쾌락의 뒷면『텔레파시 폰의 시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