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성은주_ 이별이라는 말의 무늬들(발췌)/ 걸려 있다는 것 : 문숙

검지 정숙자 2019. 10. 31. 00:27

 

 

    걸려 있다는 것

 

     문숙

 

 

  나뭇가지 모양의 바나나 걸이를 샀다

  바나나를 어딘가에 걸어 두면 싱싱하게 보존된다고 한다

  아직도 자기가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꿈을 꾸기 때문이라는데

  바닥에 두면 나무에서 떨어진 줄 알아 빨리 썩는다는 것이다

 

  어느 해외 입양아가 파양당하고 청년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왔다가

  끝내 못 찾고 고시원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이다

  그에게는 부모도 자식도 아내도 없어 매달릴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지에서 떨어진 열매라 생각해 버린 것이다

 

  아이들도 다 자라서 내 곁을 떠나고

  일생 나를 가슴에 붙이고 사셨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나도 지금 꿈을 잃은 바나나다  

   -전문-

 

 

  ▶ 이별이라는 말의 무늬들/ 시가 내게 오는 시간- 1 (발췌)_ 성은주/ 시인

  '의지'에 관한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지'라는 단어를 보면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의지意志로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두 번째 의지依支는 '다른 것에 몸이나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문숙 시인의 시 「걸려 있다는 것」도 이 두 가지 '의지'를 담고 있다. 1연에서 나뭇가지 모양 바나나는 몸을 기대어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꿈을 꾼다. 2연에서 나뭇가지 모양 바나나는 몸을 기대어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꿈을 꾼다. 2연에서 해외 입양아는 친부모의 사랑에 기대려 했으나 의지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다. 3연의 시적 화자도 의지하고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나'의 꿈은 가족이 떠나면서 사라진다. 의지할 대상에 대한 희망의 끈이 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꿈을 꾸게 된다."나도 지금 꿈을 잃은 바나나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1연의 바나나처럼 그런 착각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착각조차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하고 싶다. 우리의 삶이 허공만 허우적거릴 순 없지 않는가. 착각에서 벗어나서 진짜 내가 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닌 내가 나의 주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면 내가 나를 이끌어주는 꿈도 가능하다. 무엇이든 맹목적인 것은 무섭다. 그 대상이 사라지면 한순간에 스스로를 놓아버리게 되니까. 삶 속에서 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필요하다. (p. 23-24)

 

   -----------------

  *『시와정신2019-가을호 <우리 시대의 시정신_ 61> 에서

  * 성은주/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2019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에를 떠나며/ 서정학  (0) 2019.10.31
파도에게/ 김승희  (0) 2019.10.31
불가능한 것들/ 박민서  (0) 2019.10.30
플라나리아/ 정선  (0) 2019.10.30
날개를 공중에 감춘 오리가 쏟아진다/ 최서진  (0) 201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