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혜원_ 인간에 대한 질문(발췌)/ 호모 사케르 : 이현승

검지 정숙자 2019. 10. 20. 23:52

 

 

    호모 사케르

 

    이현승

 

 

  아우슈비츠엔 정신병과 감기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은유가 무섭다.

  정신병원이나 감기가 없는 곳이 다 아우슈비츠 같기 때문이다.

 

  뭔가 없어져야 해서 결국 없애버린 곳은 다 강제수용소 같다.

  한 덩어리의 빵을 위해 누군가를 벼랑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면

  부모가 제 자식을 때려 죽여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자칫

  무슨 일이든 다 하면 그건 안 한 것만 못한 것인데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는 열정이

  되려는 것을 막으려는 힘과 맞붙는,

  혁명은 너무 뜨거운 사랑이어서

  혁명 이후는 권태도 그만큼 깊다.

 

  더 이상 혁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란

  한두 번 달려보고 나서는 전력질주하지 않는

  선착순 달리기의 뒷무리들 같다.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우슈비츠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쪽에 인간은 있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최소한 인간이 필요하다. 

   -전문, 『창작과비평』2019 - 여름호 

 

   * 프리모 레비

   

 

 

  ▶ 인간에 대한 질문(발췌)_ 이혜원/ 문학평론가

  "벌거벗은 생명"으로 번역되는 '호모 사케르'는 이탈리아 철학자인 아감벤의 동명의 책을 통해 널리 쓰이게 된 용어이다. 아감벤은 주권 권력과 호모 사케르의 관계에서 근대 정치의 핵심을 발견한다. 호모 사케르는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조르조 아감벤,『호모 사케르』, 박진우 역, 새물결, 2008, 45쪽)으로서 주권 권력에서 배제되는 동시에 포섭되는 예외적 존재이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들이나 불법노동자들도 현대 사회에 편만한 호모 사케르들이라 할 수 있다.이현승의 『호모 사케르』는 아우슈비츠의 호모 사케르들에 대한 쁘리모 레비의 증언에서 출발하고 있다. 쁘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이것이 인간인가』를 비롯한 여러 편의 증언 문학을 내놓았다. "아우슈비츠엔 정신병과 감기가 없었다"는 쁘리모 레비의 간명한 증언은 그곳이 얼마나 혹독하고 참담한 공간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신병과 감기는 기피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쉽게 제거하기 힘든 질병들이다. "뭔가 없어져야 해서 결국 없애버린 곳"은 강제수용소처럼 극단적인 생명정치가 행해지는 곳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생명 정치적 신체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주권 권력 본래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위의 책, 42쪽) 주권 권력은 생물학적 생명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고 정교하게 조종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주권 권력의 횡포는 극에 달해 심지어 정신병과 감기를 없앨 정도로 강력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주권 권력에서 배제된 타자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극단적 폭력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주권 권력이 과도하게 작동하여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지 않는 야만의 상태가 된다. (p.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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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2019-가을호 <탐구, 지냔 계절의 좋은 시> 에서

  * 이현승/ 2002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생활이라는 생각』등

  * 이혜원/ 문학평론가, 1991년《동아일보》로 등단, 저서『현대시의 욕망과 이미지』『현대시 운율과 형식의 미학』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