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대한_ 보퉁이의 변증법이 훔쳐 낸 시적 형식(발췌)/ 고복 저수지 : 이영광

검지 정숙자 2019. 10. 15. 22:00

 

    고복 저수지

 

    이영광

 

 

  고복 저수지 갔다

  최강 한파가 보름 넘게 못물 꽝꽝 얼려 놓았다

  저수지 주변 매운탕 집 메기들이 이곳 출신이 아니라는

  뻔한 사실 하나를 입증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증거가 필요하다

  광범위는 광범위보다 더 넓다 전부니까

  그게 사실인데도 우리는 더 얘기했다

  두 달 만이었고 화제는 쉽기만 하고 짜증스러운

  정치여서, 이 추위 가고 날 풀리면 혹

  메기수염 매단 메기들이 풍악처럼 물살에 밀리는

  자연을 볼까, 자연산을 볼까, 깔깔거렸다

 

  고복 저수지 갔다

  최강 한파가 한 달 넘게 못물 꽝꽝 얼려 놓았다

  뻑뻑한 죽을 젓듯 떠다니거나 펄에 웅크려 겨울을 나는

  메기들의 마른 유족들이 얼음장 아래 없다는

  뻔한 소문 하나를 팔기 위해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위증이 필요하다

  광범위는 광범위보다 더 넓다 전부다

  하지만 붉은 탕과 차가운 소주를 비우고 우리 일행은

  휑한 전부를 보며 감탄한다 봄은 멀었군 빈틈이

  없어, 조그맣고 조그만 전부를 손가락질하며

  원경에서 거닐며 녹말 이쑤시개를 씹다 뱉으며   

    -전문-

 

 

   ▶ 보퉁이의 변증법이 훔쳐 낸 시적 형식(발췌)_ 조대한/ 문학평론가

  이쯤 되면 그것이 증거인가 위증인가 하는 식의 구분은 이 시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서사를 한 편의 영화라고 상상해 보자. 주인공이 저수지에 가고, 매운탕을 먹고, 수다를 떤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신(scene)이다. 한데 다음 신에서 주인공이 똑같이 저수지에 가고, 매운탕을 먹고, 내용이 조금 달라진 수다를 떨게 된다면, 관객은 이제 해당 장면으로부터 살짝 빠져나와 그 차이와 반복을 만드는 형식이나 이러한 루프가 만들어지는 세계의 원인, 구조 등에 생각을 돌리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이 반복되는 시를 읽으면서 위증과 증언의 진위 여부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저수지라는 무대 혹은 이러한 사유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시적 형식에 보다 집중하게 된다./ 시의 무대로서 반복되는 '고복 저수지'는 자연산 메기의 출생을 입증해 주는 자연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실상 저수지를 포함한 그 주볌의 풍경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것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시인과 일행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인식 틀의 크기를 넘어서는 범주이기 때문에, 시인은 그 "조그만 전부를 손가락질하며" 감탄하듯 겨울을 즐기고 깔깔거리며 자연을 논한다. 커다란 양식장 같은 저수지에서 자연산 메기를 이야기하다가, 녹말가루로 가공된 이쑤시개를 씹는다. (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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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바다2019-가을호 <작가연구/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이영광/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그늘과 사귀다』『끝없는 사람』등

  * 조대한/ 2018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