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풍
정숙자
그저 놔두면 무생물
펼치면 벽과 벽 넘어온 나비
편 채로 엎어놓으면 팔작지붕, 또는
눈 동근 어미 새의 지극한 날개
그 안쪽 활자들은 한서寒暑에도 끄떡없을뿐더러
어떤 비수, 강풍에도 휠 리 없는 혼이라 하네
돌아 나온 길이거나
막다른 골목에서도
사원이며 첨탑이며 등불이 될 뿐
나는 그, 벗을 오래 믿었고
나는 그, 분을 오래 기댔고
나는 그, 신을 오래 섬겼지
내 길은 오롯이 그, 분이 닦아주신 거라네
나는 오로지 그 분을 사랑했네
품고 자고 끼고 걷고
한없이 아끼며 까마득히 우러른다네
그, 문에 이르면 눈물이 타네
이 비탈에 어찌 그런 분들 살았나 하고
이 진토에 어찌 이런 책들 남았나 하고
-『문학과창작』2019-가을호
---------------
* 시집 『공검 & 굴원』(4부/ p. 106-107)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제10시집 · 공검 & 굴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오의 눈/ 정숙자 (0) | 2019.10.04 |
---|---|
크로노스/ 정숙자 (0) | 2019.09.13 |
水- 밀도/ 정숙자 (0) | 2019.06.29 |
제32회 동국문학상 수상_정숙자(시) '공검' 외 2편/ 심사평/ 수상소감 (0) | 2019.05.18 |
전해수_ 기호의 서식들(전문) ; 시사사 포커스_ 정숙자/ 작품론 (0) | 2019.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