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정오의 눈/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9. 10. 4. 03:26

 

    정오의 눈

 

    정숙자

 

 

  우리는 거기. 그 안에서 덤벙거린다

 

  그 시력은 퇴화되지 않는다

  밤에조차 감지 않지만

  어떤 한마디도 흩지 않는다

 

  다 알면서 다 봤으면서도

  누가 무엇에 걸렸을지라도

 

  비할 바 없이 따뜻하고 맑고 조용한

  그 눈이야말로 (그러나)

  가장 무서운 눈일 수 있다

 

  총괄적으로 담담한 그 눈이야말로

  그만의 비공개적

  합목적적 눈일 수 있지 않은가

 

  하. 그러면 어때. 내 눈이 그 눈을 속이지 않는다면 그 눈도 내 눈을 속이지 않는다. 그저 걸으면 된다. 그 눈은 사심 없는 눈. 인간으로선 도저히 '모방'에도 접근할 수 없는 눈. 개벽 이후 하루에 단 한번 껌뻑이는 눈.

 

  그 큰 눈을 믿고 골짜기 물은 절벽에서도 힘차게 뛰어내리지. 호수는 돌에 맞아도 굴렁쇠를 굴리며~ 굴리며~ 굴리며~ 웃지. 더 많이 아픈 가슴이 더 많이 사랑하는 거라고 믿지. 태산이 무너져도 그 눈에 기대어 새파란 무릎을 찾지.

 

  우연히 발견한 책상 밑 아기 거미 마른 주검을

  차마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는 눈

 

  고만고만한 그런 눈들도 그 큰 눈은 다 보고 있지

  다 알고 있지. 다 다 다··· 기억도 하지. (그러니)

 

  하. 그때 좀 그런 게 어때

  흑. 지금 좀 이런 게 어때

   -『다층』 2019-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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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2부/ p. 74-75)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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