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해탈의 시편/ 김원길

검지 정숙자 2019. 7. 11. 13:30

 

 

    해탈의 시편

 

    김원길

 

 

  웰 다잉(well-dying)이란 말이 있다.

  웰 빙(well-being)에 상대되는 말이겠는데, 사람이 죽는 문제에도 잘 죽고  못 죽는 게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예로부터 사람은 천수를 다하고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집에서 가족들의 임종 속에서 와석종신臥席終身하는 것이 죽을 복이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걸 누가 장담하나? 현대에 와서는 사람이 객사하거나 비명횡사할 조건은 너무나 많다. 가장 흔한 교통사고, 전쟁, 전염벙, 산업재해, 범죄 등등으로…… 그런데 어떻게 웰 다잉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웰 다잉은 잘 죽기, 즉 죽는 방법론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해 놓아야 할 일과 그 준비를 어떻게 잘 하는가의 방법론이다.

  그것은 주로 자기 신체와 재산의 처리 문제, 자기가 남기는 문화적 유산에 대한 처리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과는 별도로 죽음을 앞둔 인간의 마음 가지기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성현과 철인들이 이미 설파한 바 있지만 그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의 친구인 시인들의 시에서 찾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시들 중에서 인간이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달관한 사생관이 담겨 있는 시들 몇 편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고려 때 승려 나옹선사의 "청산견아靑山見我"로 시작하는 해탈시이다. 여기 번역은 우리 말로 구전되어 오던 것을 조선 세종 임금의 한글 창제 이후에 한글로 표기한 것이리라.

 

 

  靑山見我 無言以生 청산견아 무언이생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蒼空見我 無塵以生 창공견아 무진이생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解脫嗔怒 解脫貪慾 해탈진노 해탈탐욕

  노염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如山如水 生涯以去 여산여수 생애이거

  산같이 물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 我以無語 청산혜요 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蒼空兮要 我以無垢 창공혜요 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 無惜兮 요무노이 무석혜

  성냄도 벗어 놓고 아쉬움도 벗어 놓고

 

  如山如風 而終我 여산여풍 이종아.

  산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말을 바꾸어 보면 우리는 청산처럼 묵묵히, 창공처럼 깨끗하게, 물같이 겸손하게, 바람같이 자유롭게 생을 살라는 것이다.

  불평하지 말고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자연 그 자체가 되자는 것이다.

  또 한 스님, 서산대사의 해탈시를 보자.

 

  生也一片浮雲起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生死去來亦如然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으오

 

 

  그리고 이러한 사생관은 누구보다도 우리 시대의 걸출한 시인 서정주 님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 잘 나타나 있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 만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라도 다시 만나는

  그런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전문,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비록 바람이라 할지라도 연꽃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면 이는 욕심과 집념이 있는 것이고 연꽃을 만난 후의 바람이라면 욕심과 집착에서 해탈하여 당연히 자유로울 것이다.

  죽음이란 살면서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의 이별이다. 그러나 그걸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 않는 마음가짐의 연습, 체념하기의 연습: 그것이 일찍부터 잘 깨쳐지고 체화된다면 우리가 생사 간에 물이 되든 바람이 되든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나 그것을 이루고자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인간사이다.

  나의 졸작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는 바로 그런 심경을 토로한 시이다.

 

 

  미닫이에 푸른 달빛

  날 놀라게 해

 

  일어나 빈 방에

  좌불처럼 앉다.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

 

  벌레 소리 잦아지는

 

  시오리 밤길

 

  달 아래 그대 문 앞

  다다름이여

 

  울 너머 꽃내음만

  한참 맡다가

 

  달 흐르는 여울 길

  돌아 오나니

 

  내 아직 적막,

  길들지 못해

  -전문, 김원길「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 

 

 

  여기서 적막에 길든다는 것은 다름 아닌 해탈을 의미한다. 해탈이 다름 아닌 적막이란 말이니 나 같은 속인에겐 해탈이 적막만큼 두려운 것이다. 그러니 오밤중을 잠 못 이루고 몽유병 환자처럼 달 아래 서성대는 것이다. 이 또한 얼치기 구도자의 민낯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 승려도 시인도 아닌 시골의 이름 없는 선비 한 분이 남긴 일화는 필자가 최근에 시로 옮겨 본 것인데 배울 점이 있어 소개한다.

 

 

  나 인제 고만 살란다

   -전문, 「시골 할배」

 

 

  후평마을엔 새골할배란 글 잘하는 선비가 사셨다.

  일생 농사를 지었지만 동네에 갓난 아기가 나면 이름도 지어주고 남의 제문도 지어주고 일진도 봐주는 인자한 분이셨다.

  동네가 워낙 산골이라 중학에 못 가는 아이들을 아침 일찍 사랑에 불러 모아 한문을 가르치고 돌려 보내 부모님 농사도 돕게 했다.

  평생 동네 밖을 나가지 않고 그렇게 여든여섯을 사셨다.

  마지막 생신날엔 동네 노인들 불러 잔치를 베풀고 저녁을 먹고나자 가족들에게 일일히 술 한 잔씩을 나누어 주고는 말했다.

  "야들아, 내가 인제 고만 살란다. 이부자리 펴다오."

  가족들은 들었지만 노인은 눕자 잠들어선 다시 깨어나지 않으셨다.

  생일날 죽으면 신선이 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크게 슬퍼하지만은 않았다 한다.

 

  어떤가? 산촌에 은거하여 농사 짓고 가족을 거느리고 안빈낙도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동네를 문화적으로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한 것을 보면 건강을 위한 절제된 생활 또한 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초개 같은 대응! 어느 성인인들 이같을 수 있을까? 웰 빙과 웰 다잉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 감명 깊었다.(p.305-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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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2019-여름호 <시와 이야기가 있는 수필> 에서

  * 김원길/ 1971년『월간문학 & 1972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개안』『들꽃다발』등, 저서『안동의 해학』, 시선집『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한다』『지례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