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몽중인(夢中人)/ 강경애

검지 정숙자 2019. 6. 19. 17:51

 

 

    몽중인夢中人

 

    강경애

 

 

  어느 날 아침, 거실에 앉아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가 누군가의 눈빛과 마주쳤다. 창밖의 그녀도 우연히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려 안쪽을 바라보게 된 모양인데, 서로의 눈빛이 부딪치는 순간 번갯불 같은 섬광이 번뜩였다. 두 눈빛은 처음에는 어리둥절, 다음에는 놀라움으로 서로를 주시하였다. 창밖의 그녀도 움직이지도, 또 피하지도 않고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녀는 어디서 본 듯하다 했더니 나와 쌍둥이처럼 닮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내 모습이 거실 유리창에 비추이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창 안의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창밖의 그녀는 지나가는 중이라 서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입고 있는 옷이 서로 같지 않았다.

  갑자기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지럼증이 일어나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창밖을 보니, 그녀가 사라지고 없었다. 급히 밖으로 나가 골목을 휘둘러보다가 조금 더 멀리까지 달려가 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헛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꿈이겠지 하고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모습, 아니 나와 닮은 그녀가 뇌리에서 영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직장 동료가 내게 한 말이 나를 또 어리둥절하게 했다. 어제 전철역에서 나를 봤는데 여러 번 불러도 아는 척을 안 했다면서, 어디를 그렇게 황급히 가는 중이었냐고 물었다. 나는 요즘은 전철을 타고 다니지 않기에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했더니, 틀림없이 나였다고 동료는 분명하게 말했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집 창가에서 본 것도 바로 그녀, 아니 나의 도플갱어가 아닌가. 얼만 전에도 지인이 지방의 어느 백화점에서 나를 봤다고 전화하면서, 왜 자기한테 들르지도 않고 갔냐고 물어서 황당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 뒤로 나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닮은 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퇴근해서 집에 올 때마다 내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것 같아 '휙' 돌아보면 사람이 아닌, 길가 전등에 비치는 내 그림자이거나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무서워 집에 도착하기까지 서너 번씩 뒤를 돌아보며 뛰다시피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면,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처럼 닮은 인물로 나온다. 두 사람 다 노래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며, 똑같이 어머니를 여의고 어릴 때에 난로에 손가락을 데이는 사고를 당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누군가와 함께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폴란드에 사는 베로니카가 크라코우 시 광장을 지나가는데, 마침 프랑스에서 관광을 온 베로니크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그 광장에서는 시위가 한창이라 관광객들은 모두 황급히 버스에 올라탄다. 그때 떠나려는 버스 안을 쳐다보고 있던 베로니카가 광장의 경치에 묻혀 창 안에서 사진을 찍던 베로니크의 필름에 담기게 된다.

  그 뒤 폴란드의 베로니카는 우연히 어느 음악가를 만나 콘서트의 독창자로 발탁되어 공연하는 날, 갑자기 노래를 부르다가 쓰러져 죽는다. 원래 심장병이 있어 가끔 가슴 통증을 느끼기는 했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자기를 닮은 베로니크를 본 뒤 죽은 것이다.

  사실 도플갱어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 왔고 문학이나 영화로도 접하긴 했지만, 나에게까지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나는 나와 똑같이 피를 나눈 쌍둥이도 없는데 서로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아무튼 영화에서처럼 먼저 본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면, 그날 내가 그녀를 먼저 봤을까, 그녀가 나를 먼저 봤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행방을 모르는 나의 도플갱어를 어디에서 다시 찾을까? 혹시 그녀가 나를 먼저 봐서 이미 죽은 것은 아닐까? 이게 정말 사실인가, 아니면 모든 것은 꿈이고 그녀는 단지 몽중인夢中人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지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

 

   -----------------

  * 동국문학인회 vol.46『東國詩集』에서/ 2019. 5. 17. <문학아카데미> 펴냄

  * 강경애姜敬愛/ 수필가. 시인, 문예대학원 문창과, 92년『시와 비평』으로 등단, 수필집『바람은 바람을 일으킨다』『삭제하시겠습니까』등, 산문집『그래 우리 진정 사랑한다면』『긴 악수를 나나누다』등, <에세이 포레>문학상 수상, 동서문화사 편집부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