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영원한 유향(幽香) 미당(未堂) 선생님/ 박희

검지 정숙자 2019. 7. 23. 12:34

 

 

    영원한 유향幽香 미당未堂 선생님

 

    박희/ 수필가

 

 

  엉뚱한 제자에게 두 번 속으신 선생님

  내가 미당 서정주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때가 1977년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동국대 국어교육과 2학년 때였다. 그해 봄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나를 보시고 대뜸 "자네 환속還俗한 지 얼마나 되었나?" 하시는 물으심에 몹시 당황하였다. 수 초가 지난 뒤 "예, 저는 출가出家한 적이 없는데요." 하고 말씀드리니, 한참을 머뭇거리시다 가셨다.

  당황한 나 역시 한참을 지난 후 대강을 짐작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복장은 교복을 입고 큰 가방을 들고 아주 짧은 상고머리로 수업 중 고정된 자리는 강의실 맨 앞자리 교수님의 턱밑에서 강의를 들었다. 이러한 복장에 선생님 강의 도중 불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 남 먼저 알아듣고 공감을 표했으니 선생님께선 영락없는 환속 승려로 보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당시 나의 수강 자세와 독특한 생활 방식은 교수님이나 여러 동료 학생들에게 회자膾炙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상고 졸업 후 회사 생활을 하다, 군대를 다녀온 나는 공부 한번 열심히 해 보겠다는 일념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선생님께서는 늘 공부 열심히 하라고 애정 어린 시선과 온화한 어조로 당부하셨다. 이해 11월 26일 선생님께선 경향신문사 주선으로 세계 일주 여행길에 오르셔서 이듬해 9월 8일 오후 3시 40분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하셨다. 사모님께서는 동격에 가셔서 함께 귀국하셨다. 당시 학교의 풍속(?)은 교수님이 해외 나가시면 공항 환송 환영이 관례였다. 스쿨버스 두 대(1호차 대학원생, 2ㅣ호차 학부 재학생)에 분승하여 김포공항으로 선생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비행기 도착 한참이나 지나서야 선생님 내외분이 나오시고, 출영 나간 우리 일행은 모두 몰려가서 인사를 올렸다. 앞자리로 나갈 군번이 아닌 나는 일행의 뒷전에 떨어져 서 있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발견하시자 5미터 정도를 느린 걸음으로 오셔서 다정하신 어조로 "자네 작품 어지간히 됐으면 가져오소"라고 말씀하신다. 깜짝 놀라 "선생님, 저는 전공이아 현대문학도 아니고, 시는 쓰지 않는데요." 하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꼐께 실망 섞인 놀라운 표정이셨다. 다시 선생님께서 "아무렴, 무얼 공부하나 열심히만 하면 되제, 공부 열심히 하소." 하셨다.

  아마 선생님께선 내가 열심히 따르며 공부하니 아마 당신께 추천을 받으려 하는 줄로 아셨던 모양잉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존경하는 선생님을 두  번이나 속여 드렸으니 송구스럽기만 하다. 이 일은 있은 후 선생님께선 이 못난 제자를 더욱 아껴 주셨고, 추천의 부담을 덜으셨는지 수시로 불러 담소의 대상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선생님의 화나신 모습

  선생님의 일상 표정은 한없이 온화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이었다. 당신의 화나신 모습을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79년 7월 2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선생님은 당시 동국대 문과대학장을 하실 때였다. 학림관 건물 입구에서 제자를 보신 선생님은 "자네, 나 좀 따라오게." 하시며 학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선생님께선 무언가 몹시 언짢고, 심기가 불편하신 모습이 역력하셨다. 제자를 앞에 두시고 떨리는 손으로 캔 맥주를 단숨에 두 병을 비우시고, 담배를 깊게 빨아 연기를 길게 뽑으시며 한숨만 쉬셨다.

  한참을 그렇게 지난 후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선생님 크게 불편하신 일이 있으신가요?" 하니, 선생님께선 "이 사람아,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시길래 날짜를 보니, 오늘 서울 롯데 호텔에서 '제4차 세계시인대회'가 오늘부터 6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었다. 오전 10시 개막식에는 최규하 국무총리,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이 참석한 성대한 행사였다. 행사 집행위원장은 편운재 조병화 선생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선생님께는 알리지도  않고 초청장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이 제자가 듣기에도 어이없고 화날 일이다.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문단의 행사를 추진하는 분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선생님을 모시며 많은 일화가 있으나 제약된 지면 사정으로 다음을 약속드리며 마치고자 한다.(p. 304-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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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19-7월호 <목동살롱 4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