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 소통Augmented communication
배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은 사용자가 육안으로 지각하는 현실에 컴퓨터로 구현한 정보를 덧씌워 보여주는 기술이다. 확장현실, 혼합현실이라고도 한다. 가상현실(Virturl reality)과는 다르다. 가상현실은 컴퓨터 안에 현실과 분리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지만, 증강현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대로 남겨둔 채 그 위에 추가적인 정보만을 덧씌울 뿐이다. 가상현실이 100% 가상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면 증강현실은 가상과 현실이 반반씩 섞인 세상이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했던 스마트폰 게임인 포켓몬 고(Pokemon GO)가 증강현실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대중에 널리 알린 계기이지 않았나 싶다. 스마트폰으로 현실의 풍경을 촬영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증강현실로 구현된 포켓몬이 화면에 나타나고, 그것을 몬스터볼로 사냥하며 노는 게임이다. 증강현실 기술에 역점이 찍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실상 위치 기반 게임(Location-based game)에 불과하다는 인상이다. 포켓몬을 만나고 싶으면 증강현실을 따로 조작할 필요 없이 그냥 그 장소에 가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포켓몬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도로건 건물이건 허공이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이래서는 굳이 증강현실을 덧씌워야만 할 필요가 딱히 없어 보인다. 현실의 풍경과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정보가 별 접점 없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래도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을 맛보기로나마 대중들에게 선보였다는 데에는 나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뇌 코일(電腦コイル, 2007)이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애니메이션이 있다. 스토리의 무대는 평범한 소도시인데 '전뇌 안경'이라는 웨어러블(Wearable)컴퓨터를 착용하는 순간 일명 '전뇌세계'라 불리는 도시 단위의 증강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은 그 안경을 사용해 전뇌세계에서만 보이는 애완동물을 키우기도 하고, 가상의 무기를 이용해 서로 전투를 벌이기도 하는 등 갖가지 놀이를 즐긴다. 물론 놀이의 기능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통신, 정보검색 등의 갖가지 사무 역시 증강현실의 홀로그램을 이용해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라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능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상 과학이 점차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유수의 기업들이 앞서 언급했던 전뇌 안경과 같은 HDM(Head Mounted Display) 증강현실 기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온 기기들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홀로렌즈(HoloLens)'다. 제품 시연 영상을 보면 아주 흥미롭다. 각종 데이터들을 홀로그램을 이용해 허공에 띄워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두 손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옮겨 정리할 수 있고, 동영상을 원하는 위치에 두고 원하는 크기로 줄였다 키웠다 하며 시청할 수도 있으며,개발 중인 오브젝트를 공유해 삼차원으로 원격회의를 하거나, 우리 집 거실 벽을 뚫고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총으로 쏴 제거하는 식의 1인칭 슈팅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대중화되기에는 부피나 가격 면에서 무리가 있는 탓에, 현재는 민간 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할 때 사용하거나 군대에서 미래보병체계를 다지기 위한 시험용으로 쓰이는 단계라고 한다.
나는 2010년 12월에 입대했다. 당시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고, 주위에도 아직 피처폰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사회로 나와 보니 피처폰은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되어 있었다. 엥, 갑자기? 다소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피처폰을 뒤로 하고 스마트폰을 장만하러 갔더랬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도 눈 깜짝할 새에 피처폰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되는 증강현실을 활용하면 세균이 득실거리는 거추장스러운 단말기를 손에 들고 있을 필요도, 겨우 손바닥 한 뼘 정도 되는 조그만 액정을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들여다볼 필요도, 지겹도록 튀어나오는 오타를 참아내며 엄지를 두드려댈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스마트폰을 시장에서 사장시킬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HMD 증강현실 기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증강현실 기기로 대체된 후, 그것은 어떠한 모양새로 우리의 신체에 자리 잡게 될까? 일상에서 사용되는 기기들은 언제나 경량화, 소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대표적으로 캄퓨터나 카메라가 그러했고, 그래서 이들은 현재 스마트폰에 서서히 밀려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증강현실 기기가 스마트폰을 밀어낼 만큼 보편화될 수 있으려면 숙명적으로 경량화 및 소형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앞서 설명한 '홀로렌즈'라는 제품은 착용하고 나면 이마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무겁고 부피도 커서 안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헬멧에 가까운 실정이다. 하지만 점점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엥, 갑자기? 하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 최종 형태는 콘택트렌즈가 아닐까 싶다. 아마 그 지점이 인간이 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편리함의 한계일 듯하다. 그쯤 되면 증강현실 기기는 필수품을 넘어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비약적으로 편리해진 만큼 의존성 역시 막강해질 테니까. 지금도 스마트폰 괴의존이다 뭐다 해서 말이 많은데 증강현실 기기는 이것을 아득히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아마 더 이상 그것을 의존이라 여기지도 않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스마트폰은 '퍼빙' 현상을 낳았다. 퍼빙(Phubbing)이란 전화기(Phone)와 냉대나 무시를 뜻하는 스너빙(Snubbing)이 결합된 신조어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스마트폰에 한눈을 파는 행위를 뜻한다. 소통을 위한 도구가 도리어 소통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주객전도 현상 중 하나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인간의 원거리 소통 능력을 발달시켜준 대신 단거리 소통 능력을 점점 퇴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퇴화는 진화의 일부다. 점점 원시적인 소통이 불필요해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증강현실 기기가 보편화될 즈음이면 인공지능 역시 발달되어 있을 것이고, 따라서 대화하는 데 필요한 수고를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상대방과 맨투맨으로 대화할 경우, 인공지능 분석기가 증강현실을 통해 표정 및 몸짓, 말투 등 갖가지 제스처를 읽고 현재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상대방이 던진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등의 육성과 보디랭귀지를 비롯한 대화를 구성하고 있는 크고 작은 대부분의 정보들을 해석해 사용자의 눈앞에 띄워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불필요한 논쟁을 효율적으로 피할 수 있고, 감정 소모 또한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기술의 진보로 이와 같은 정보 해석력의 오차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끼어들 여지 역시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더불어 거짓말이나 위선 따위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해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마트폰이 정확히 어떤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고, 또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들 잘만 쓰고 다닌다. 이처럼 대부분은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만을 향유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을 충분하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경우 과정에 대한 이해는 사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통에 관한 귀납적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인공지능의 배를 채워주고 나면 심리학 같은 학문도 더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건 사족에 불과하니까. 아마 그때가 되면 이와 같은 흐름이 오히려 새로운 윤리관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행위 자체를 오히려 인권 침해라 여기는, 그런 사고방식이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서로 대화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이다. 서로가 장착한 증강현실 기기 속의 인공지능들끼리 현상을 분석한 후 눈 깜짝할 사이에 합의점을 계산해 사용자에게 출력해줄 것이다. 사용자들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이 작업은 다시 반복되겠지만, 시행착오가 있어봤자 그것을 극복하는 데까지는 1초도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소통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감정은 극단적으로 배제될 것이고, 따라서 심각하거나 질질 끄는 분쟁이 일어날 여지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목적 없는 소통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잡담을 나눌 때 침 튀기며 야만적으로 떠드는 대신에, 기술적으로 좀 더 세련되었다고 받아들여지는 그 시대만의 기준에 엄격한 방식으로 언행을 주고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육성은 마침내 음악적 도구로서만 그 존재 가치를 근근이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망상을 소재로 SF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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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2019-여름호 <POSITION 7 문화의 발견> 에서
* 배준/ 2018년『자음과모음』으로 등단, 장편소설집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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