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금은돌_ 문학 읽기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발췌)/ 공모 : 정재학

검지 정숙자 2019. 3. 31. 00:36

 

 

    공모共謀

 

    정재학

 

 

  죽은 지 이틀 만에 시체에서 머리카락이 갈대만큼 자라 있었다 나와 그림자들은 시체를 자루에 싸서 조심조심 옮겼다 그림자 하나가 울컥했다 죽이려고까지 했던 건 아닌데나머지 그림자들이 그를 달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을 거야차 트렁크 열고 시동 좀 걸어놔 간신히 1층까지 왔는데아파트 현관 앞에 순찰중인 경찰이 보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필이면 자루가 찢어져 그의 멍든 허벅지 살이 드러났다 하하 이건 고구마입니다 우리는 서둘러 트렁크에 실으려 했다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림자 하나가 칼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옆의 그림자가 그의 팔을 잡았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우리는 자루를 펴보였다 자루 안에는 지푸라기와 고구마가 가득했다 경찰관과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고구마 하나가 김이 모락모락 났다 방금 찐 고구마인데 하나 드셔보시겠습니까? 그럴까요 네 고맙습니다 경찰관이 고구마를 한입 베어물자 썩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 전문-

 

 

   ▶ 생의 발끝에서 아름다운 낙법落法)이 필요한 이유/- 1. 바로 곁에 다가온, 죽음(발췌)_ 금은돌

  주인공이 살인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을 거야." 나의 생존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그림자"는 경찰과 마주친 주인공을 종용한다. "경찰"이 묻는다. "이게 무엇입니까?" 질문이 던져지자 "그림자"는 진실을 은폐한다. 경찰은 "한번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질문을 한다. 그러자 "그림자"는 "칼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경찰을 협박한다. 언제라도 제2차, 제3차 살인이 가능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주인공은 자루를 펴 보인다. 그런데 자루 속에 "지푸라기와 고구마가 가득"하다. 진실을 진실로 보지 못하고, 진실이 거짓으로 둔갑하는 장면이다. 거짓이 진실이 되어, 상황을 역전시킨다. 의심이 가는데, 의심을 거둘 수는 없다. 뭔지 석연치 않은 감정이 밀로 올라오지만 "경찰관과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미소"를 짓는 순간, 경찰과 주인공은 범행을 공유하는 공모자가 된다. 여기서 "미소"는 진실을 은혜하는데 동조하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미소"는 묘한 연대감을 표현하는 페르소나이다, 원래 웃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웃어주는 것이다. "웃음이 솔직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웃음은 다른 사람들과의 합의 즉 일종의 공범의식(앙리 베르그송, 정연복 옮김, 『웃음』, 세계사, 1992, 15쪽.)을 숨기고 있다./ 시인은 경찰관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었을까? "방금 찐 고구마인데 하나 드셔보시겠습니까?" 경찰이 씹은 고구마에서 "썩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불유쾌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아마도 시인은 국가 공권력을 향해, 그에 상응하는 심리적인 벌을 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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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은돌의 문학 읽기『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에서/ 2019. 3. 9. <국학자료원 새미> 펴냄

  * 금은돌/ 2008년『애지』로 평론 부문 · 2013년『현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연구서『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한 칸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