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시 비평의 (불)가능한 영토(발췌)
-『딩아돌하』2018년 겨울호
# 시 비평의 정정확성과 정예성_유성호
결국 우리는 비평이 문학 행위나 현상에 대한 반성적 자의식이자 그것의 논리적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과 독자를 잇는 매개적 해석자 역할에서 벗어나, 그 스스로 심미적 텍스트로 몸을 바꾸려는 충동을 가질 수도 있고, 독자들과의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더욱 강화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오가면서 인문학적 통찰을 매개시키는 역량에 의해 비평가의 입지는 가름될 것이고, 좋은 비평은 좋은 시인과 작품을 대중적 기호와 구별해내는 역량과 그것의 논리화 과정에서 탄생해갈 것이다. 유행의 코드 밖에 소외된 고유하고도 독자적인 언어 세계를 발굴하여 그것을 대중의 기호 속으로 편입시키는 노력 역시 비평에 부여된 파생적 몫이 되어갈 것이다. 우리 시 비평이 감당해야 할 실존적 책무가 아닐 수 없다. (p.26-27.)
# 오늘날의 시와 비평의 가능성/ 자신의 비평에 대한 소고_선우은실
해보기 2-'모르겠다'는 비평의 언어_ '해보기'와 관련하여 다른 불만이 있다면 이것이다. '요즘 시'가 너무 어렵고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시를 안 읽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가끔 마음 속으로 비판이 인다. 나 역시 어떤 종류의 시에 대해서는 '취향'의 문제를 들어 선호하지 않기도 하지만 최소한 그것에 대해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최대한 나의 감각으로 읽었을 때 이 시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가령 예전에 어떤 시가 자연적 풍류와 정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인간'성을 투영하여 읽게 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말하게 된다./ '모르겠다'는 말은 좀 더 어렵게 뱉어져야 한다. 모르겠다는 마음속의 감각을 마침내 단 한순간이라도 확신하게 되기까지, '취향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문학은 이해의 차원보다도 자신의 문학적 사상과 감각으로 읽었을 때 독해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러한 연유로 사회적 담론을 통해 말하는 것이 언제나 더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정당한 위치를 제공하는 것 같지는 않다. 별 수 없이 내가 나라서 읽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이러한 관점들이 더 많이 쌓인 후에 보이는 (그때 공유되던) 감각이 있을 것이다. (p.40-41.)
# 시를 읽는 한 경험에 관하여/ 시 비평의 (불)가능한 영토_김선태
인간의 지성은 무한한 연속성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필연적으로 연속성을 분절함으로써 그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체에 걸러진 것들을 다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 전환하는 번역의 작업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대상으로 변한 사물에 대한 앎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해석, 혹은 비평의 작업 역시 벤야민이 "비평은 작품의 무효선언(Mortifikation)"이다.(발터 벤야민,『독일 비애극의 원천』최성민· 김유동 옮김, 한길사, 2009. 270면)(Kritik der reinen Vernunft)라고 하였던 것처럼 그와 유사한 절차를 거친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순수이성의 한계를 규정하고자 한 작업처럼, 비평(Kritik)은 대상으로 삼은 것에 한계를 드리워 그것을 명료한 앎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작품은 비평의 무효선언(Mortifikation)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변모(modification)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작품은 비평의 그늘이 던지는 포획의 그물에서 부단히 달아나는 것을 본질로 지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품, 특히 시는 세계에 관한 앎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일'에 관한 경험을 생성해내기 때문이다.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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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아돌하』2018-겨울호 <기획특집|시 비평의 (불)가능한 영토> 에서
* 유성호/ 경기 여주 출생, 저서『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침묵의 파문』등
* 선우은실/ 경기 인천 출생, 2016년《경향신문》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 김선태/ 전남 영광 출생, 2011년《세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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