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발광고지(發光高地)/ 서윤후

검지 정숙자 2018. 11. 25. 02:38

 

<2018, 제19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발광고지發光高地

 

    서윤후

 

 

  버려진 산소호흡기를 핥다가

  어린 고양이 입김 서리는 것을 본다

 

  무언가 닦아내면 어떤 것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를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아른거림만이

  유일한 궁금증

 

  또, 또 지리멸렬한 날씨

 

  무너진 성곽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잘 닦아놓은 미래가 있었다

  모두가 돌아오게 되는 반환점으로

  숨 쉬는 것을 가여워하게 되는 전개를 펼치고

  그 사이사이의 안개

 

  오리무중의 발진이다

 

  창광하는 밤벌레들처럼 거리로 나온

  아침 인간의 얼굴을 구경한다

  전망할 수 없는 표정들에 휩싸여 있으면

  어린 고양이의 숨 같은 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또, 또 어두워지려는 심장

 

  들리지 않는 것을 어둡게 하면

  꿈 밖으로 나와 소리치는 빛

  환호는 환희의 별미라도 되는 듯이

  인간을 재주넘는 (영혼. 마음 다음에 생각나는 것)의 

  취미활동

 

  무덤가의 구구절절한 침묵을 듣는다

  이곳 사랑은 절판된 기억으로 세워져 있다

  그들은 모두 옛사람 같다

  세련된 스카프를 해도, 영어로 된 개 이름을 불러도

 

  죽음이 신간처럼 여전히 새롭다는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푯말의 역사를 읽는다든지

  소문이 눈앞 미래로 유인한다든지 하는

 

  장례식장에 막 납품된 수육의 뜨거운 김

  아무도 배고프지 않은 곳에서 해치워나가게 되는

 

  무엇이 신비로운 감옥을 짓는가

  그 안에서 알고 싶어 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또, 또 아름답기 위해 사라지는 것들

 

  어제 입었던 옷을 입는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늘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몇 개의 부음을 화면에서 쓸어 넘긴다

 

  열 몇 개 와이파이 중에

  비밀번호 들어맞는 게 없다

  매일 두절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어

 

  가장 어두움 중에 가장 어둡지 않은

  그런 머리색을 가진 학생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전문, 식순 리플릿에서 베낌-

 

  -------------------------------

  * 제19회 박인환문학상 및 시현실 신인상 시상식. 2018.11.26-17 : 00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