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장재선_『시로 만난 별들』(발췌)/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 장재선

검지 정숙자 2018. 7. 18. 16:16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걸 그룹 소녀시대

 

     장재선/ 문화일보 편집국 문화부장

 

 

  파리의 베르시 스타디움

  2만 객석이 꽉 찼던 것을

  기억한다.

  꺄악꺄악 비명과 환호가 하나로

  터지던 그 밤의 열기.

 

  아메리카에서 유럽까지

  케이팝의 흥을 몰고 갔던

  그대들이 자랑스러웠으나

  아시아의 저널리스트인 나는

  오지 않은 미래를 응시했다.

 

  그 후로 오 년,

  세계를 다 밟지 못한 채

  그대들의 소녀시대가 끝났어도

  고개를 떨구지는 않고

  또 다른 미래를 응시했다.

 

  저 앞에 새로운 십 년이 있으니

  포기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자도생의 길을 가면서도

  언제든 모여서

  춤과 노래의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은가.

 

  그대들의 소녀시대는 끝났어도

  파리의 팬들이 우리말로 외쳤던

  그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

    -전문-

 

 

  소녀시대(少女時代, 2007~) / Profile essay

  걸 그룹 '소녀시대'는 소녀들이 세상을 평정할 시대가 왔다는 뜻이라고 한다. 소녀시대가 유럽을 점령할 때, 나도 그 현장에 함께 했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이겠으나, 그런 느낌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다.

  2012년 케이팝 그룹들의 파리 공연, 그 절정은 역시 소녀시대의 춤과 노래였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소녀시대는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는 춤 동작으로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 전 해에 있었던 SM타운 콘서트(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공연)를 통해 소녀시대를 접했던 관객들은 <소원을 말해 봐>, <훗> 등의 우리말 노래를 능숙하게 따라 불렀다. 소녀시대가 이때 파리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신곡 <더 보이즈The Boys>도 대부분 따라 불렀다. 유튜브 등을 통해 이미 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 후 소녀시대는 프랑스 방송 토크쇼에 출연했다. 카날 플뤼Canal Plus 방송의 <르 그랑 주르날Le Grand Journal>이었다. 녹화 현장에서 프랑스 팬들은 소녀시대의 구호 '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를 한국어로 합창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방송 출연 후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만났을 때, 소녀시대 멤버들은 "월드투어에 대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파리에 오기 직전에 소녀시대는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CRS <데이비드 레터멘쇼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와  ABC 모닝 토크쇼 <라이브! 위드 캘리LIVE! with Kelly>에 출연했다.

  미국 · 프랑스 등 해외 방송에 잇달아 출연하게 된 소감과 관련, 수영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이고 큰 영광'이라며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음악을 들려 드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팀 막내인 서현은 "르 그랑 주르날 녹화 현장에서 프랑스 팬들이 한국어로 뜨겁게 응원해준 덕분에 신곡 '더 보이스'를 부르는 공연을 신나게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리 역시 "프랑스 팬들이 한국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관심을 보여서 놀랍고 기뻤다."고 밝혔다.

  물론 프랑스 일반인들은 소녀시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전언이었다. 케이팝에 심취한 일부 청소년들과 그들 부모들만이 열광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객관적인 당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케이팝 아이콘인 소녀시대의 유럽 공략은 뜻깊게 느껴졌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청소년들이 먼 극동의 나라 한국과 소통하는 통로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시대는 보이 그룹 슈퍼주니어의 여자 버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수만이 이끄는 SM 엔터테인먼트는 2007년 7월 6일부터 9인조 여성 그룹 소녀시대 구성원을 한 명씩 UCC를 통해 공개했다. 첫 UCC로 윤아를 공개하고 7일 티파니에 이어 8일 유리, 9일 효연, 10일 수영, 11일 서현, 12일 태연, 13일 제시카, 마지막으로 14일 써니로 개인 영상이 모두 공개되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이들 멤버들은 그동안 학교를 다니며 노래, 춤, 연기, 언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훈련을 받아 왔다. 멤버들의 연습생 기간은 평균 5년, 수영은 무려 7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서 소녀시대 일원이 됐다. 1989년 3월생인 태연이 맏언니였고, 막내는 1991년 6월생 서현이었다. 평균 나이 17.6세였다.

  소녀시대는 2007년 8월 2일 데뷔 싱글 앨범 《다시 만난 세계》를 발매하고 3일 뒤 음악 프로그램 <SBS 인기가요>를 통해 정식 데뷔했다. 같은 해 11월 첫 정규 앨범 《소녀시대》를 냈다. 이승철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타이틀 곡이 화제를 일으키며 그해 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후 <Kissing You>, <Baby Baby> 등이 히트하며 음악 프로그램 정상에 올랐다. 당시 걸 그룹으로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원더걸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됐다.

  2009년 1월 첫 미니 앨범 《Gee》가 중독성 있는 노래와 안무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국내에 화려한 컬러 스키니진 패션이 유행했고, 이른바 개다리춤은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퍼졌다. 소녀시대는 같은 해 6월 두 번째 미니 앨범 《소원을 말해 봐》에서 제복 콘셉트와 제기차기 춤으로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며 거대한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2월 개최된 서울 단독 콘서트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 시기 리더 태연은 드라마 <쾌도 홍길동>과 <베토벤 바이러스> OST로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태연이 부른 <만약에>와 <들리나요>는 소녀시대 멤버들이 단순히 눈요기에 그치는 아이돌이 아니라 가창력을 갖춘 가수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0년 1월 두 번째 정규 앨범 《Oh!》역시 큰 성공을 거뒀고, 3월 신곡을 추가해 만든 리패키지 앨범 《Run Devil Run》도 연속 히트했다. 소녀시대는 이 해 6월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Genic>와 <Gee>, <Mr. Taxi/Run DEvil Run>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오리콘 차트를 점령했다. 

  2011년 6월에 발매한 일본 첫 정규 음반 《GIRLS' GENERATION》은 87만여 장을 팔아 한국 여성 음악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이 해에 국내에서 세 번째 정규 앨범 《더 보이즈The Boys》를 내놨다. 이어 미국에서 싱글을 발매하며 세계 진출에 나섰고, 앞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유럽의 방송에 출연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주목을 끌었다.

  2012년 4월에는 멤버 태연, 티파니, 서현의 앞 글자를 따온 유닛 그룹 '소녀시대-태티서'를 결성하고 미니 앨범 《트윙클Twinkle》을 발매했다.

  2013년 네 번째 한국 정규 앨범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가 발매됐다. 랩 중심의 힙합풍으로 시작되는 곡은 본격적인 도입부에서 일렉트로닉으로 변모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교차시킨다. 다소 실험적인 곡이었는데, 이마저 히트시키면서 역시 소녀시대라는 평을 들었다. 이 해 6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월드투어 콘서트를 열었다.

  2014년 2월 네 번째 미니 앨범 《미스터 미스터Mr. Mr》는 실험성보다 대중성을 강조했고, 역시 음악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이 앨범은 9인조 원년 멤버의 마지막 공식 앨범 활동으로 남았다. 같은 해 9월 제시카가 '탈퇴-퇴출' 논란 끝에 그룹에서 빠진 탓이다. 

  소녀시대는 스캔들이 없는 대표적인 걸 그룹이었으나, 이 시기부터는 각 멤버의 열애설이 잇달았다.

  2015년 4월, 8인조 체제로 첫 싱글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공개했지만, 방송 활동이나 콘서트 등은 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선 공개 싱글 앨범 《PARTY》를 발매했고 8월 다섯 번째 국내 정규 앨범 《Lion Heart》를 내놨다. 2016년 8월 싱글 앨범 《그 여름(0805)》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던 소녀시대는 2017년을 맞아 기념 앨범을 내놨다.

 

  소녀시대의 개가는 SM의 장기 기획 프로젝트 결실이었다. 멤버들은 각 개인별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면서 그룹으로서는 화려한 군무와 노래로 강렬한 이미지를 심었다. 이는 어려서부터 음악, 춤, 외국어 등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덕분이었다.

  인권 측면에서 보면, 어린 재능을 혹사시키는 것을 긍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대중문화의 자산으로써 아이돌 그룹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그들이 스타로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도록 그 바탕을 재대로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데뷔한 후엔 국내외 활동을 전략적으로 펼쳐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 모델이 바로 소녀시대라고 할 수 있다.

  소녀시대는 초기에 멤버 수가 많아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나, 각 멤버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다채로운 매력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요인이 됐다. 데뷔 후 각종 음악 방송에서 100회 이상 1위 토로피를 거머쥔 것은, 그 매력 발산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걸 그룹으로서의 인기가 꺾이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태티서와 같은 유닛 활동이 나타났다. 또한 태연뿐만 아니라 써니, 티파니, 효연 등도 솔로 가수로 나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연기 세계에 뛰어든 것은 꽤 됐다. 그 선두 주자인 윤아는 KBS TV <너는 내 운명>(2008~2009)의 주인공으로 이미 탁월한 연기력을 과시한 바 있다. 그녀는 <사랑비>(KBS2, 2012), <총리와 나>((KBS2, 2013~2014), <THE K2>(tvN, 2016) 등과 영화 <공조> 등에서 활약했다. 중국 후난위성 TV에서 방송된 드라마 <무신 조자룡>에서 주인공 하후경의 역을 맡아 중국 내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윤아는 2017년에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여주인공으로 시청자를 만났다.

  유리는 SBS 드라마 <패션왕>(2012)에서 앤태거니스트antagonist 역할을 인상적으로 해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유리가 맡은 최안나를 무척 미워했다. 유리가 얼마나 극에 잘 녹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2016년에 지성과 호흡을 맞췄던 SBS <피고인>에서 변호사 서은혜로 완벽하게 변신하며 톱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수영은 MBC 드라마 <내 생애 봄날>(2014)에서 호평을 받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해서 빠짐없이 시청했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 이식 수혜자에게 전이된다는 세포 기억설Gellular Memory을 소제로 한 드라마 줄거리는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감우성의 노련한 연기가 진부함을 이겨냈다. 그를 사랑하는 역할을 한 수영도 극 초반에는 발랄한 면모를, 중후반에는 절절한 감성을 내보이며 자기 역할을 잘 소화했다. 수영은 이후 <38사기동대>(OCN, 2016) 등에서 연기력을 쌓았다. 2017년 가을에 방영된 MBC 주말 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막내 서현도 연기자 대열에 가세했다. 그녀는 드라마 <열애>(SBS, 2013),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SBS, 2016) 등의 조연을 맡고 종종 뮤지컬 무대에도 서며 연기에 대한 감을 익혔다. 2017년 CJ E&M의 5부작 <루비루비럽>에서 주역을 시도해 본 그녀는 MBC 50부작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의 타이틀 롤을 차지했다. 극중에서 서울 중앙지검특수부 수사관 강소주 역을 맡아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처럼 소녀시대는 솔로 가수로, 연기자로 각자도생의 길을 열고 있다. 2017년 10월 티파니, 수영, 서현이 SM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하지 않고 소속사를 떠나기로 해 파장이 일었다. 소녀시대가 해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해체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긴 호흡으로 우리 곁에 살아남아 반짝이기를 바란다. 오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소녀시대'의 이름으로 가끔 뭉쳐서 노래를 불러줬으면 한다. 이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대중문화 큰 별로서의 보람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p.232-241)

 

 

  * 이 책에 수록된 스타 33인: 황정순 최은희 신구 임권택 패티김 김지미 회불암 박상규 조영남 이장호 / 조용필 최백호 안성기 강석우 현숙 최성수 송강호 차인표 엄정화 김윤진 김정은 하지원 수애 강예원 / 전지현 성유리 손예진 하석진 문채원 박하선 김옥빈 윤두준 소녀시대

 

------------

* 장재선 지음詩로 만난 / 2017. 9. 25. 초판 1쇄, 2017. 10. 30. 초판 2쇄 발행 <작가> 펴냄

* 장재선/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인터넷을 전공, 재학 중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1985년 전국대학생기독교문학상 수상. 이후 소설과 시로 등단했으나 창작에 힘을 쏟진 못했다.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2010~2011)을 지냈고, 지금 한국문인협회 문학생활화위원회 위원장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며, 극장에 앉아 있는 것을 자전거 타기 다음으로 좋아한다. 1991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재직. 현재 《문화일보》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칼럼집 『영화로 보는 세상』, 시집 『AM7이 만난 사랑의 시』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