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파란』 2017 겨울호 사건들 2
issue 사건들 2(발췌)
◆ 이찬(계간 파란 편집 위원)_ 사건들, 새로운 문학사의 비전
예술에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은 결코 하나의 작품이거나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건'이 도래시키는 단절의 상황으로부터 비롯되는 새로운 '예술적 짜임'에 의해 이루어진다. (……) 결국 바디우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새롭게 발생한 예술 작품들의 상호 침투와 공명 현상들, 그리고 이들이 다 함께 이루어 내는 집합적 배치와 짜임 관계들(Konstellationen)에서 예술적 진리의 생산 절차를 찾아냈던 셈이다. 시와 예술의 진리는 그 내재성의 차원에서 형성되는 명명 불가능한 어떤 사건, 곧 새롭게 나타난 특이성의 집합적 배치이자 전혀 다른 '예술적 짜임'의 출현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권두 에세이. p. 5~6.)
issue 1 _ 사건들 2(발췌)
노춘기(2003년 『문예중앙』으로 시인 등단, 시집 『오늘부터의 숲』『너는 레몬나무처럼』)
식민지 바깥에서 외치는 자유_ 상해판 《독립신문》의 위치// 상해 《독립신문》은 안창호의 주도로 창간이 추진되었다. 안창호는 1919년 5월 25일 미국에서 상해로 건너와 신문 발간을 발의했고 이광수 등의 노력으로 인쇄된 신문을 창간할 준비가 진행되었다. 《독립신문》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19년 8월 21일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의 제호는 《독립》이었는데 10월 25일(제22호)부터 《독립신문》으로 바꾸었다. 발행 장소는 상해 프랑스 조계였으며, 발행 주기는 격일간으로 매주 화, 목, 토 3회 발행이었다. 이광수가 이 신문의 사장, 주요한이 출판부장이었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상해를 중심으로 중국 각지와 만주 지방, 미주 등 해외 동포들에게 송부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도 비밀리에 상당한 부수가 반입되었다. 국내 배포를 위해서는 비밀리에 신문을 반입하고 이를 배포할 조직망이 필요했다. 따라서 신문의 배포는 주로 임시정부의 교통국交通局과 연통제聯通制 조직망을 이용했다. (p. 13~14.)
김동희(저서 『異鄕』(공저), 주요 논문 「식민지 체험과 번역의 정치학」「정지용의 일본어 시 개작과 '聲'에 실린 종교시」등)
1920년의 서울, 밤의 산책자_ 김소월의 등장과 「서울의 거리」// 1920년, 김소월이 조선 문단에 등장했다. 김소월은 『창조』5호(1920.3.1.)에 「浪人의 봄」을 포함하여 5편의 시(「浪人의 봄」「夜의 雨適」「午過의 泣」「그리워」「春崗」)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산학교를 갓 졸업한 무명이었던 그가 동경 유학생들의 작품 발표장이었던 『창조』에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던 것은 오산학교 스승인 김억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창조』에 작품을 발표한 후 김소월은 그해 7월 창간한 『학생계』에도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이 역시 김억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이었다. 『학생계』 창간호에는 「먼 后日」(목차에는 「먼後日」로 되어 있다.) 「죽으면?」(「서울의 거리」를 포함한 『학생계』5호에 수록된 세 작품은 김종욱에 의해 1999년 1월 6일 《동아일보》기사를 통해 한차례 공개되었고, 이후 2004년 5월 『문학사상』-통권 379호-을 통해 또다시 발굴작으로 소개된 바 있다.) 「거츤풀허트러진모래동으로」3편이 '추천 시'로 수록되었다. 『학생계』는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것으로, 당시 한성도서주식회사의 기자였던 오천석이 잡지 발행의 전권을 가지고 있었고, 李一, 노자영, 朴泰元 등의 동경 유학생 출신의 지식인들과 『창조』동인이었던 김동인, 김억, 김환, 전영택 등이 합세하여 학생을 계몽하기 위해 발간한 잡지이다. 『창조』에 작품을 발표하였다고는 하나, 『학생계』 창간호에 김소월이 동경 유학생들과 나란히 작품을 발표한 것은 파격적인 특혜로, 이를 통해 김소월에 대한 김억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p. 30~31.)
김진희(1996년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학술서 『근대문학의 장과 시인의 선택』『한국 근대시의 과제와 문학사의 주체들』등, 평론집 『시에 관한 각서』『미래의 서정과 감각』등)
임화, 저널리즘을 탐구한 비평 주체(이 글은 기발표한 「1930년대 후반 임화의 저널리즘론과 비평」, 『어문연구』44-2호, 2016을 축약 · 수정한 것이다.)_ 저널리즘 장場에서 비평을 문제 삼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임화는 1920년대 이후 주요한 매체의 필자로 활동하면서 당대 저널리즘의 장에서 문학과 정치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임화는 당대 저널리즘의 주요한 동력이자 그 결과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1930년대 후반, '비평'의 존재와 위상을 저널리즘의 장 안에서 보다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 저널리즘 관련 평문과 비평 자체의 본질과 역할을 묻는 평문이 이 시기 집중되고 있음은 이런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 임화는 문화를 생산하는 물적 조건으로서의 자본, 그리고 시장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생산을 담당한 문화 주체의 정신과 의식을 강조한다. 이처럼 스스로 창조적 문화를 생산해야 한다는 의식의 자각을 통해 그는 문화 생산의 왜곡된 생산관계가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문화'가 역사적으로 인간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주체적이고 정신적인 실천의 행위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임화가 저널리즘에서 비평 정신의 회복을 강조하는 이유는 저널리즘의 주체들이야말로 자본과 시장이 유인하는 방향에 저항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문화 생산을 정위시킬 수 있는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p.p. 51. 64.)
이찬(2007년 《서울신문》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 『헤르메스의 문장들』『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등)
1941년 2월 10일: 한국적 낭만주의의 탄생(이 글은 이미 발표된 바 있는 학술 논문인 「서정주 『화사집』에 나타난 생명의 이미지 계열들」(『한국근대문학연구』제34호, 2016 하반기, 한국근대문학학회, pp. 265-307)을 『계간 파란』8호(2017년 겨울호)의 '이슈' 주제인 '사건들 2'에 맞추어, 그에 적합한 체재와 형식으로 대폭 수정하여 개고한 것이다. 또한 학술 논문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소용되는 개념의 적확한 정의와 규정된 용법이 아니라, 문학비평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존재하는 그 잠재력의 최대치를 확보하려는 예술-비평가의 자의식과 미학적 기투가 곳곳에 휘감겨 있다. 이 글의 문장 표현이나 구성법 및 스타일 역시 이와 동일한 테두리에서 온다.)// 서정주의 『화사집』은 하나의 사건이다. 1941년 2월 10일. 이 날짜는 『화사집』의 발간일이기도 하지만, 현대 한국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날짜들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야만 한다. 이 필연성의 근거와 맥락은 『화사집』이 불러일으킨 근본적 혁신과 전복의 벡터, 곧 '사건의 자리Ie site evenement("나는 적어도 하나의 사건의 자리가 나타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부르기로 하겠다. 나는 자연적 상황의 내재적 안정성과의 대립을 부각하기 위해 '역사적'이라는 용어를 골랐다. 나는 역사성은 국소적 특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상황이 셈하고 현시하는 다수들의 (적어도) 하나는 자리, 즉 고유한 원소들(자리가 일자-다수를 형성하도록 해 주는 다수들) 중의 어느 것도 상황 속에서 현시되지 않는 속성을 가진 다수이다. 따라서 역사적 상황은 최소한 그것의 점 중의 하나에서는 공백의 가장자리에 있다"(알랭 바디우 저, 조형준 역 『존재와 사건』새물결, 2013, p.295.) "바디우에게 모든 사건은 진리의 과정, 곧 사건의 자리Ie site evenement 에서만 발생한다. 저 사건의 자리는 어떤 필연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연적이며, 환원 불가능하고 식별 불가능한 어떤 개별성들이 출현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그는 이런 개별성들을 다시 특이성singularite이라 명명하거니와, 이 특이성의 항목들은 자연에 대립하는 것, 곧 정상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지칭된다. 이 항목들이 바로 역사적인 것, 곧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동인이자 그것을 사유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그 무엇들이다. 그것은 또한 자연적 다수가 아니라 역사적 다수에만 존재한다."(이찬, 『날짜들, 사건들의 현시와 의미들의 계열화』, 『계간 파란』창간호, 2016. 봄, 2013, p.20.))에서 온다. (p.72 // 각주 부분 p.111~112.)
강웅식(1993년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 『해석의 갈등』『김수영 신화의 이면』등
김수영의 시학: 연금술과 존재의 예술// 김수영(1921-1968, 47세)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반세기의 세월이 지났다. 1970년대부터는 주로 비평가들에게 주목을 받다가 1980년대부터는 대학의 학위 과정의 연구자들에게도 주목을 받기 시작한 김수영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문학적 성과가 해방 이후 우리 시단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1998년 조선일보사가 기획한,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50인이 뽑은 해방 이후 한국 대표 시인 50인의 순위 매김에서 김수영은 그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였다.《조선일보》, 1998.7.31. 참조). 그러나 김수영과 그의 시에 대한 평가가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지는 않은 것 같다. 한쪽에는 거의 '김수영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각이, 다른 한쪽에는 거의 '반김수영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김수영주의'와 '반김수영주의'는 김수영과 그의 시에 대한 호감과 반감의 관점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인데 , 여기서 굳이 '주의'라는 낱말과의 결함을 통하여 그러한 뜻을 나타내고자 한 이유는 다른 시인들의 경우보다 김수영의 경우에는 호감과 반감의 대체적인 정도의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온몸의 시학'으로서 김수영의 시학, 연금술과 존재의 예술을 두 개의 지점들로 하는 김수영 시학이 실제 시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아마도 우리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풀」에서 김수영은 바람에 풀이 나부끼는 모습의 관찰을 통하여 풀의 움직임과 관련된 어떤 이미지를 포착하였고, 그것을 '풀'이 '수동적 변용'에서 '능동적 변용'으로 이행해 가는 이야기로 구축하였다. (p.p. 120. 142.)
한래희(주요 논문 「김현 비평에 나타난 비평의 유형학의 변화와 그 함의」「소설 <벌레 이야기>와 영화 <밀양>의 서사 전략 비교」등, 주요 평론 「폭력과 유토피아, 그리고 문학이라는 세계」「<노동의 새벽>과 '불온한' 문학이 되기 위한 조건」등, 주요 역서『장르: 역사, 이론, 연구, 교육』(공역)
미학적 주체의 정치성을 사유하는 한 방식_ 1970년대 김현 비평을 중심으로// 1974년에서 1975년까지 프랑스로 짧은 유학을 다녀온 후 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통해 당시까지의 자신의 문학론을 체계화한 문학 일반론을 발표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책에서 제시한 김현 문학론의 요체는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라는 명제이다. 문학이 억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쓸모없음에서 기인하고 문학의 쓸모없음이라는 속성이 오히려 억압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유용한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 김현 문학론의 주요 뼈대이다./ 사실 '문학'은 소비 상품으로 팔릴 수도 있고 이면의 전달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문학이 쓸모없다는 것은 사실 진술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 문학이어야 문학적인 방식의 부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1970년대 중반 김현의 글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문학의 무용성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거부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문학이 소비 상품의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1970년대 중반 산업 · 소비사회로 진입한 당시의 사회적 현실에서 김현은 시가(김현의 문학론은 문학의 여러 장르 중 시를 중심에 놓고 전개된다. 다른 장르에 비해 무용성의 개념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이유 중 하나이다.) '팔리지 않는 존재'로 소비 · 산업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시와 시인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업사회의 대중화 현상에 대한 하나의 각성제가 된다"(김현, 「산업화 시대의 시」, 전집 4, p.110.) 라는 구절을 보면 잘 팔릴 수 있는 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팔리지 않음을 시의 존재 의미로 삼아야 한다는 관점을 읽을 수 있다. (p. 151~152.)
이수명(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마치』등,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현대시』, 시론집 『횡단』, 비평집 『공습의 시대』
1990년대 시, 발산하는 모더니즘// 1990년대의 시에서 전시대의 시와 다른 특징적인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놀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상이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몇몇 시인에게서 과감하게 '놀이'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시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놀이'가 생경하게 나타난 것을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 1990년대 시는 1980년대 이후 세기말과 세기 초를 연속하여 최근까지 근 3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모더니즘 시단의 출발에 자리하고 있다. 리얼리즘과 긴장하고 대립했던 당시의 고투는 지금까지 갱신을 거듭하며 스며들고 있다. 발랄한 감각으로, 사물과 현상이라는 외연의 확장으로, 시공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하고 해방된 이미지로, 풀려난 언어 놀이로, 탈중심화된 사유로 재탄생하고 있다. 모더니즘은 수그러들지 않고 다양하게 분화하며 정교해지고 있는 중이다. 가히 유례 없는 모더니즘의 활성화이며, 모더니즘의 발산이다. 그 시발점에 1990년대 모더니즘 시가 있다. (p.p. 171~172. 177~178)
이혜원(1991년《동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주요 저서 『현대시 깊이 읽기』『현대시의 윤리와 생명의식』등
감각의 발견_ 장석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의 시사적 의미// 1990년대 시는 정치적 성향이 유난히 강했던 1980년대 시와는 대조적으로 개인적이고 내밀한 정서가 두드러진다. 이 시기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예외적일 정도로 정치적 성향이 약화된 시기에 해당한다. 질곡의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우리 시의 정치적 관심은 꾸준히 지속되며 시사의 중심을 이루어 왔다. 1980년대는 우리 시사에서 정치성이 가장 고조되었던 시기로 중심축이 현실 면으로 크게 기울어 있었다. 그리하여 현실과 가장 거리가 먼 서정적인 시들조차 기본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의 자장 안에 놓여 있었다. 이런 양상의 직접적인 이유는 1980년 시대적 의미를 결정짓는 광주항쟁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시인들은, '광주의 5월'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사실"(김재홍, 「1980년대 한국시의 비평적 성찰」,『한국현대문학사』,현대문학, 2005, p.550.)이라는 말처럼 광주항쟁을 야기한 부정과 저항은 1980년대를 지배한 보편적 정서이다. 1980년대 시사에서 정치적 현실이 차지하는 의미가 절대적인 것에 비해 1990년대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시에 대한 반발력으로 인해 전혀 다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시의 공간에는 '문화적 삶'의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시적 주제들이 떠올랐다. 죽음과 소멸의 미학, 도시적 일상성의 탐구, 대중문화와의 접속, 디지털 환경과 사이버 세계, 몸의 시학,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 생태학적 상상력, 정신주의의 세계 등 다채로운 테마들은 전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세계 인식의 다원화를 가져왔다." (……) '감각'은 우리 시사에서 오랫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특질이다. 서정시의 경우도 주체의 감정이나 정신의 표현이라는 관점이 주도해 왔고 감각은 그에 대한 보조 작용으로 간주되어 온 편이다. "감각은 의미나 이념과 무관하거나 그것들로 보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필연적인 출발지이자 정박지다."(권혁웅, 『시론』, 문학동네, 2010, p.531.)와 같은 관점이 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의미나 이념이 감각을 결정짓는 중심 역할을 한다는 오래된 관념과 정반대로 감각이 그것들의 출발점이자 귀결일 수 있다는 이 새로운 주장은 상당 부분 들뢰즈의 감각에 대한 이론과 관련된다. (p.p. 181~182. 183.) (※ 블로그주: 장석남 시「새 떼들에게로의 망명」「소래라는 곳」「군불을 지피며 1」「별의 감옥」「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섬진강에서」「그리운 시냇가」등 그에 따른 상세 내용은 책에서 참조 바람.)
이강진 (2012년《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반짝이는 폐허_ 2000년대 한국 시단에 대한 스체치와 단상들// 문학사의 시대 구분이 특정한 '사건'들의 등장에 의해 분절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2000년대 한국 시단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 다름 아닌 '미래파'였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다양한 하위문화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일군의 시인들은 '농경사회적 자연주의 대 도시의 모더니즘이라는 전통적인 대립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제3지대로, 혹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자아를 탈피한 새로운 주체로 평가받으며 한국 시단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한국시에 빠르게 확산된 갖가지 문화소들은 기존의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으며, 이와 같은 소재 활용이 자아내는 생소함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각각의 작품들에 미적 전위의 인상을 부여해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단의 무수한 찬탄 뒤에 가려진 분명한 사실은, 이 놀라운 등장들이 대부분 혼합의 양상이었지, 적극적인 종합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미래파로 호명된 시인들의 작업에는 분명 파편화된 주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었지만, 그와 같은 파편화는 주체를 둘러싼 상황들에 내재하는 모순으로부터 능동적으로 전개된 것이기보다는, 주체들이 소비문화적 감수성의 분출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아마도 평단과 시단 간의 무시할 수 없는 세대 차이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를 쉬이 간과했으며, 결과적으로 저 폐허를 성급하게 '미래'로 선언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 비평가라면 누구든 천재의 출현을 두 손 모아 기다리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조건에서 진정 성공할 수 있는 시인의 유형은 천재가 아니라 영리한 인간이다. 주어진 게임의 규칙을 재빨리 숙지하고, 그 물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이 그에게 부여된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가 낙원으로부터의 추방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말들에 최상의 가치가 배정되는 문학의 에덴은 시의 역사를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시단이 갈수록 이렇다 할 '사건'을 만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 '80년대 생 시인'이라는 기이한 득세는 한국시가 얼마나 협소한 지평으로 후퇴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표징이다. 과거에는 '사건'의 출현을 통해 비로소 '새로움'이 감지될 수 있었던 반면, 최근에는 새롭게 등장한 시인들에게 무언가 '사건'이 될 만한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럴듯한 문학사적 분절을 일구어 내고 그 첫머리에 자기의 이름을 아로새기고 싶다는 평론가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젊은 시인, 새로운 시인, 첫 시집을 찾아 헤매는 강박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시의 범주를 시인의 나이로 구분하려 들었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세대의 변화가 으레 변별적인 사건을 제공해 주리라는 나이브한 기대가 마침내 최소한의 체면치레마저 포기함으로써 등장한 결과였던 셈이다. 그러나 스스로 시의 본질과 원리를 (현존하는 작품들로부터 수합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장르의 본질과 원리 자체에 대한 분석과 규명의 시도로써) 고민하지 않으려는 시단에 '혜성같이 등장한' 천재의 출현이 과연 가능할까? 문학사적인 '사건'이란 결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다. '천재의 등장은 어디까지나 칸트적인 의미의 '계승'으로부터, 즉 기존의 양식의 본질을 거머쥠으로써 그 내재적 원리를 자기화하는 시도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착에 가까운 젊음에의 요구들은, 대부분 시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고찰의 과제를 '우연히 등장할지 모를'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비겁함의 소치에 불과하다. (p.p.p. 204~205. 211.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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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2017-겨울호 <issue 1_ 사건들 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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