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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미_역사소설 『광개토태왕 2』(발췌)/ 삼황오제를 넘어

검지 정숙자 2018. 6. 25. 23:06

 

 

     삼황오제를 넘어

 

    손정미

 

 

  불 왕자(광개토태왕의 동생)가 태왕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다. 불 왕자는 부왕인 왜왕 인덕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처와 함께 왜로 가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태왕은 얼마 후 서구를 왜에 보내 현지 사정을 소상히 파악해오라 명했다. 왜에는 백제가 먼저 들어가 영향력을 펼쳤지만 태왕이 즉위한 후 고구려 장수와 승려, 화공 들을 보내고 있었다. 왜주 인덕은 태왕의 기세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고구려 장인들이 건너가 사찰을 짓고 화공들이 벽화로 그림 솜씨를 보여주자 열광했다. 특히 선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다. 

  403년, 왜주 인덕은 자신의 딸을 태왕의 후궁으로 바쳤다. 인덕은 태왕에게 딸을 바치며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폐하는 성덕이 삼황(태호 복희, 염제 신농, 황제 헌원)을 능가하고 공은 오제(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요, 순)을 넘으셨으니 오부와 괄맥이 딸들을 후궁으로 보내었습니다. 남쪽 땅을 복속하여 삼한을 아우르셨고 서쪽으로는 두 진(동진과 후진) 의 땅을 누르셨사옵니다."

  그만큼 태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의 딸을 바쳤던 것이다.

  태왕은 불 왕자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다스렸다.

  "왜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많은 걸 보고 배우고자 하니 가서 많이 베풀어라."

  "예, 폐하."

  불 왕자는 차마 태왕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태왕은 불 왕자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태왕은 불 왕자 일행이 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서구에게 명해 호위하도록 했다. 태왕은 또 왜에서 가르칠 경 박사와 의술을 가진 자, 악공들도  함께 가도록 배려해주었다. 왜왕 인덕이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태왕은 연왕 모용희가 비려(거란족)를 치는 척하는 것이 사실은 고구려를 겨냥한 것임을 간파했다. 태왕은 군사를 움직인다는 첩보를 듣자마자 장수들을 불러 준비를 시켰다. 비려 주변을 돌던 척후는 암호를 그린 붉은 비단을 달아 날려 보냈다. 이를 받은 성주들은 연기와 기를 올려 연군이 다가옴을 급히 알렸다. 태왕에게 모용희의 동선이 하루 만에 전달됐다.

  태왕은 고구려 보병을 밀집대형으로 배치했다. 전선을 넓게 펼친 것이 아니라 뒤로 종심(종대의 중심)을 깊게 배치했다. 땅이 얼어붙었으므로 넓게 펼칠 경우 어느 한구석이 미끄러져 틈이 생기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넓은 평원에서 연군의 기병이 고구려군을 포위하면, 뒤쪽 보병이 뒤를 돌아 즉각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장창을 든 보병의 밀집대형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연왕 모용희는 눈앞에 펼쳐진 고구려군을 보고 진격 명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연군의 북소리가 울리자 기병들이 활을 쏘며 고구려군에게 돌격했다. 밀집대형 앞에 선 고구려 궁수들은 연의 기병에게 일제히 화살을 날린 뒤 뒤로 빠졌다. 고구려 조의선인(벼슬 중 하나)들이 연의 기병과 맞서는 순간 밀집대형을 중심으로 왼쪽 뒤에는 경보병이, 그 옆에는 기병이 이중으로 섰다. 오른쪽 측면 뒤에도 경보병이 서고 그 옆에 기병이 이중으로 섰다. 고구려 밀집대형의 측면을 공격하던 연의 기병은 당황했다. 본대 뒤에 빠져 정렬했던 고구려 기병과 보병이 전진하는 동안 보병 뒤에 기병이 가서 섰다. 공격과 방어가 지중 삼중으로 강화된 것이다. 현란한 진의 변형으로 연군은 우왕좌왕하며 경악했다.

  고구려군 뒤에 숨었던 낙타 몇십 마리가 뛰어나와 연군을 놀라게 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괴물에 몇백 마리나 되는 연군의 전마들이 놀라서 튀어 올랐다. 말들은 진정시키려는 연의 기병들을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달아나는 말에 밟히고 낙타에 밟힌 연군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고구려 말들은 낙타와 함께 훈련해온 터라 크게 놀라지 않았다.

  고구려 기병은 틈을 놓치지 않고 활을 쏘아댄 다음 투창을 던져 연군을 공격했다. 연의 궁수가 활을 쏘자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하고 말에도 갑옷을 입힌 고구려 중장기병이 나서서 이를 막았다. 중장기병이 연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밀집대형은 강하게 충격을 가했다. 양측 날개에서 격자 모양으로 섰던 보병과 기병은 상대편 측면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연의 병사들은 주력인 기병이 무너지자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이미 삼천 리를 행군해온 연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매번 고구려에 당하면서 또 우릴 사지로 끌고 오다니!"

  연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달아나면서 모용희를 원망했다.

  "달아나는 놈을 모조리 참하라!"

  모용희는 도주하는 연군을 보며 소리쳤다. 부장과 군관들이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자 모용희는 부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군관들은 그제야 하는 수 없이 칼을 들고 달아나는 병사들을 베었지만 그 많은 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칼을 뻇기는 군관도 나타나고 저희들끼리 사상자는 더욱 불어났다. 연의 병사들은 달아나면서도 얼음에 미끄러져 심하게 다치거나 고구려군에 붙잡혔다. 겨우 도망쳐 산으로 숨어들어 간 자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제 고구려는 북으로는 비려와 숙신족(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을 꼼짝 못하게 했다. 서로는 요동을 장악하고 설산과 초원 지대를 마음대로 누볐다. 남으로는 백제의 숨통을 쥐었고, 계림은 신하의 예를 다했다. 고구려의 은혜를 입고자 안달이 난 바다 건너 왜에는 분국을 세워 이들의 갈증을 덜어주었다. 고구려를 능멸했던 진은 남으로 쫓겨난 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했다. 한때 중원을 호령하던 진(전진前秦)은 몰락했고, 고구려를 괴롭히던 연은 모용희를 끝으로 패망했다. 세를 확장하던 위(북위)는 고구려 태왕의 기세에 눌려 함부로 넘보지 못했다.

  태왕은 이제 고구려를 넘어 사해를 호령했다. 서역의 나라들과 고구려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쇠를 교환했고, 초원의 부족들은 우수한 말을 바치고 고구려의 쇠를 얻고자 했다. 덩이쇠와 철기를 실은 고구려 상단은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어마어마한 규모로 움직였다. 많으면 수백 리에 걸쳐 상단이 펼쳐졌다. 멀리는 흑해에까지 물건을 실어 나르고 받았다. 

  불 왕자는 태왕의 승승장구를 볼수록 자괴감에 빠졌다. 이제 자신에게는 영영 어떤 기회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진묘선인(불 왕자를 돕지만 실제로는 고구려 황실에 전해오는 선적 仙籍을 빼내려는 흑심이 있다.)은 태왕의 기세를 보면서 수심에 가득 찼다. 부족한 대로 사욱(한족 출신으로 태왕을 돈황으로 안내한다)이 고인돌을 파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고 고인돌을 파괴한 결과는 드러나고 말 터였다. (p. 316-321.)

 

   (……)

 

  "태왕께서 돌아가셨다!" (p. 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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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소설『광개토태왕 2/ 2017. 6. 27. <마음서재> 펴냄

  * 손정미/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99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20년간 활동했다,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사건 · 사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조선일보 첫 정치부 여기자로 여야 정당을 출입했다. 문학 담당 기자 시절 고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2012년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2년 뒤, 삼국통일 직전의 경주를 무대로 한 첫 역사소설 『왕경 王京』을 발표했다.

  2015년부터 고구려의 위대한 영웅이자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족적을 남긴 광개토태왕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모래밭에서 사금을 찾는 심정으로 빈약한 사료를 하나씩 구해 찾고 전문가들을 만났다. 또 광개토태왕의 흔적을 찾아 중국 집안과 심양, 갈석산 등을 답사했다. 상고사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고구려와 교류가 활발했던 실크로드를 훑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의 이스파한까지 찾아갔다. 여러 차례 답사와 고증,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완성한 역작이 역사소설 『광개토태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