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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_『시로 만난 별들』(발췌)/ 내 사랑 신상옥 : 장재선

검지 정숙자 2018. 7. 17. 16:35

 

 

    내 사랑 신상옥

    -배우 최은희 2

 

    장재선/ 문화일보 편집국 문화부장

 

 

  유엔군 낙하산들이 꽃잎처럼 내렸어요.

  어머나, 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함께 도망치던 사람들이 소리쳤어요.

  빨리 피하라고

  그 길로 청천강을 건너며 생각했지요.

  이 장면을 전쟁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그 후로 60년,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들 하는데

  정말로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질었지요.

  그래도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의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에요.

 

  눈 위에 연애의 발자국을 찍으면서도

  영화를 이야기했던 사람,

  과거가 있다고 고백하는 여자에게

  지금이 소중하다고 말해 준 사람,

  내 머리에서 옥수수 냄새가 난다며

  소년처럼 눈웃음 짓던 사람,

  남과 북의 사선을 같이 넘었던

  오직 유일한 남자였던 내 사랑.

 

  노년의 고통은 따로 있기에

  지난날의 기억을 버려야 한다지만

  당신과 더불어 지낸 시간들은

  아직도 내게 있어요.

  당신과 함께 만든 첫 영화 <꿈>

  그 꿈속에 살아 있어요.

    -전문-

 

  최은희(崔銀姬, 1926~) / Profile essay

  그녀를 만난 것은 2001년 7월, 북한에서 탈출한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 여부가 큰 관심사였다. 햇볕 정책에 따른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휩쓸 때였다. 그녀는 그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김정일이 자신을 남치한 장본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정일은 소탈한 성격에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지요. 저를 참으로 환대해 줬어요. 남쪽에 있을 땐 바빠서 생일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거기서 꼬박꼬박 생일상을 받았지요. 하지만 제가 원하지 않았는데 강제로 잡아다가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은 인권 유린이지요. 생애의 절정기를 그렇게 자유 없이 살았으니. 그 보상을 누구에게서 받아야 하나요. 김정일을 원망하는 심정이 강해요."

  그녀는 그때 회고록을 쓰고 있다고 했다. 지난 세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하니까 무척 힘들고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꼭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6·25 때 제가 국군과 인민군에게 모두 성폭행을 당해 출산을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그거 언론인이라는 이아무개 씨가 자기 책 팔기 위해 소설을 쓴 것입니다. 당시에 저는 네 번째 영화 작품을 하던 신인 배우였는데, 피난을 못 가 서울 거리서 인민군에게 붙잡혔어요. 인민군 소속 월북 배우인 심영 씨가 저를 알아봤기 때문이었지요. 그의 강요로 인민군 경비대 합주단에 합류했지요. 그러다가 엄앵란 씨 삼촌인 엄토미 씨의 밴드와 함께 탈출했어요. 그 과정에서 저를 붙잡아 국군에 넘겼다는 이 아무개 씨는 그림자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생짜 거짓말을."

  참절한 경험을 털어놓으면서도 그녀의 어투와 몸가짐에서는 절로 품위가 우러났다. 그때 처음 만난 이후로 그녀와 수차례 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느낀 것은 참으로 품격 있는 영화인이라는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그녀가 자신이 배우로 살았기 때문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극적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배우로서의 삶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이 돼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영화에 데뷔한 것은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라는 작품으로,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에 돌아온 세 청년이 마을 처녀들과 힘을 합쳐 어촌을 재건해 나간다는 계몽물이었다.

  영화계에 막 이름을 알리고 있던 그녀는 활영 감독 김학성의 구애에 못 이겨 동거를 하게 된다. 김학성은 이미 결혼한 경력이 있었는데, 그녀와 함께 살면서 의처증 증세를 보이며 손찌검까지 했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그즈음에 신인 감독이었던 신상옥이 다큐멘터리 <코리아>를 촬영하며 그녀를 출연시켰다. 이것을 계기로 신상옥은 그녀와 자주 만나며 사랑을 키워 갔다. 그녀는 남자와 동거했다가 헤어진 과거 때문에 총각인 신상옥과의 만남을 저어했다. 그러나 신상옥이 워낙 진실하게 그녀를 대하는 것에 이끌려 1953년 결혼을 하게 된다.

  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 대표 여배우로 각인된 그녀는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4년엔 <공주님의 짝사랑>으로 감독에 데뷔했고, 1967년엔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78년 1월 홍콩에서 납북된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든 뉴스였다. 남편 신상옥도 그녀를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해 7월에 역시 납북됐다. 납북된 이후 약 8년 동안 이들 부부는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영화 17편을 제작했다. 이 중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체코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소금>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도중에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탈북에 성공했다. 이들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 의해 납북이 자행됐다."고 증언했으나, 자진 입북설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199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후 2001년 '극단 신협' 대표를 맡고, 이듬해 안양 신필름영화예술센터를 설립했다. 그녀는 신상옥 감독과 함께 영화 예술에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6년 신 감독이 타계하자 큰 실의에 빠졌다. 이후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으나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 사업을 벌이기 위해 애썼다.

 

  그녀를 만났을 때,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에서 어떤 게 가장 애정이 가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모든 작품에 정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역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첫손에 꼽았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해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수작이다.

  "그 작품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고 그 사이를 옥희가 오가는 장면은 제 아이디어예요. 두 주인공이 서로 쑥스러워하며 감정을 숨길 때 순수한 아이가 사랑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 장면에 지금도 긍지가 있어요."

  그녀는 이 영화로 '동양적 미인'이라는 이미지의 화관花冠을 얻었다. <로맨스 그레이>(1963)에서 바걸 역할을 받았을 때는 "좋아하는 여배우의 이미지를 깨지 말아 달라."는 팬들의 항의가 영화사로 빗발치기도 했다.

  그녀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상록수>(1961)에서, 문예영화의 걸작인 <벙어리 삼룡이>(1964), 명성황후 역할을 했던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등도 대표작으로 언급했다.

  그녀와 신상옥 감독은 '한류 바람'을 가장 먼저 일으킨 영화인이기도 하다. <빨간 마후라>(1964)를 일본과 동남아에 수출해 크게 흥행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군 기지에서 촬영을 하면서 무척 고생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점점 더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참으로 뿌듯하다."고 했다. (p.25-29) ▩ 

 

  * 블로그주: 배우 최은희는 이 책이 출간된 이듬해인, 올해 4월(2018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이 책에 수록된 스타 33인: 황정순 최은희 신구 임권택 패티김 김지미 회불암 박상규 조영남 이장호 / 조용필 최백호 안성기 강석우 현숙 최성수 송강호 차인표 엄정화 김윤진 김정은 하지원 수애 강예원 / 전지현 성유리 손예진 하석진 문채원 박하선 김옥빈 윤두준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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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선 지음詩로 만난 / 2017. 9. 25. 초판 1쇄, 2017. 10. 30. 초판 2쇄 발행 <작가> 펴냄

  * 장재선/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인터넷을 전공, 재학 중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1985년 전국대학생기독교문학상 수상. 이후 소설과 시로 등단했으나 창작에 힘을 쏟진 못했다.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2010~2011)을 지냈고, 지금 한국문인협회 문학생활화위원회 위원장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며, 극장에 앉아 있는 것을 자전거 타기 다음으로 좋아한다. 1991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재직. 현재 《문화일보》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칼럼집 『영화로 보는 세상』, 시집 『AM7이 만난 사랑의 시』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