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신발
배경희
이탈리아 해변가 발견된 신발 하나
발목이 들어있다 잘린 면이 깨끗하다
단면은 의문이 된 채 거슬러 올라간다
해류와 바람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고사리 포자들까지 단서로 지목된 채
수사는 물살을 타며 국경까지 넘어간다
신문에도 뉴스에도 햇빛비명만 있을 뿐
미궁의 파편들은 심해까지 들어간다
형체만 겨우 남아있는 수수께끼 난파선
소리 없는 울음들이 끝까지 흔들린다
모래 속에 삭아가는 난민들의 신발들
때때로 떠오른단다 기억도 목이 메면
- 전문, 『시조시학』 2015_겨울호
▶ 정신의 탄생,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발췌)_ 최도선
2015년 9월 2일 터키 해변에서 발견한 빨간 티셔츠에 청색 반바지를 입고 엎드린 채 죽은 시리아 난민의 3살 아일란 쿠르디, IS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코스 섬으로 가려다 난파당한 사진과 기사를 보고 전 세계는 경악했다. 난민을 거부하던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수용하는 계기가 일어나며 쿠르디는 천사의 별칭을 얻었다. 또 어디 그뿐인가? 같은 해 파리 테러사건으로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11월 17일 프랑스 유명 TV프로그램 르 쁘띠 주르날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테러 발생했던 자리에 추모하러 나온 시민의 인터뷰 중 아이와 아빠의 대화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짓게 했다.
"우리는 엄청 나쁜 사람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몰라요."
"걱정할 필요 없어 프랑스가 우리 집이야."
"나쁜 사람들이 총으로 우릴 쏠 수도 있잖아요?"
"그들에게 총은 있지만 우리에겐 꽃이 있단다."
'우리에겐 꽃이 있단다.'라고 한 아빠의 말, 어떤 시 보다도 위력 있는 이 말,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시 같은 말의 힘, 어떤 무기가 이 힘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시를 짓는다. 위의 시조가 이런 사건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위 작품처럼 시사성을 지닌 시들은 지니기가 쉽지 않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p.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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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도선 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시와표현 인문총서 01) 에서 / 2018. 1. 23. <달샘> 펴냄
* 최도선/ 1987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시집 『겨울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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