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전해수 『비평의 시그널』(발췌)/ 석수 : 황봉학

검지 정숙자 2018. 7. 9. 20:43

 

 

     석수

 

    황봉학

 

 

  돌 속의 새를 꺼내느라

  정을 대고 망치로 두드리고 쪼개고 문지르는 일에

  그는 한 시절을 다 바쳤다

 

  이윽고 수천 년 돌 속에 숨어 산 새가 어둠 속에서

  부리를 내밀고

  대가리를 내밀고

  날개를 내밀고

  다리를 내밀고

  우악스러운 발톱까지 내밀었다

 

  그러고는 한쪽 눈을 슬쩍 떠보더니 다른 눈을 마저 떴다

  새는 자신이 날아갈 허공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돌을 박차고 오를 듯

  한쪽 다리를 들고

  날개를 힘차게 펼쳤다

  그러나 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가 나머지 발을 돌에서 꺼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심스레 나머지 발의 발목까지 꺼내려다

  문득 정과 망치를 내려놓았다

 

  동굴에는 한 무리의 빛이 몰려 들어오고

  마른 바람이 새어나갔다

  그는 더는 일을 하지 못했다

 

  돌 속에 한쪽 발이 묻힌 새

  자꾸 날개를 퍼덕여 본다

 

  그가 사라진 동굴에는 밤마다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 전문-

 

 

   시와 스토리텔링, 그 가능성의 세계(발췌)_ 전해수

  이야기와 시적 묘사가 함께 어우러진 위 시는 '석공'과 '석수'의 관계가 대비되어 드러나 있다. 석공은 정과 망치로 돌을 깎는 장인이다. 석수는 석수石獸 즉 돌로  만들어진 짐승으로, 석공에 의해 완성된다. 그것은 집 앞이나 무덤 근처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위 시는 석공의 생을 규명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정을 대고 망치로 두드리고 쪼개고 문지르는" 것이 한 생의 전부인 석공에게, 돌을 깎으며 "돌 속의 새를 꺼내"는 작업은 신성함 그 자체이다. 석공에 의해 "돌 속의 새"는 "이윽고 수천 년 돌 속에 숨어 산" 모습을 드러내는데 "부리를 내밀고/ 대가리를 내밀고/ 날개를 내밀고/ 다리를 내밀고/ 우악스러운 발톱까지" 갖춘 후 생생한 그 모습을 전부 내보인다./ 그러나 석공에 의해 탄생된 새의 형상을 한 "석수"는 돌에 몸이 갇힌 채 날지를 못한다. 석수의 날갯짓이 석공에 의해 저지된 것이다. 위 시의 '석공'과 '석수'의 관계는 이렇게 마법 램프 속에 갇힌 '지니'와 '알라딘'의 관계처럼 엮여 있다. 램프 속 '지니'는 '알라딘'에 의해 비로소 되살아나듯이, 석수는 석공에 의해 자태를 드러내지만 운명적으로 그 욕망이 제한되고 제약을 받는 것이다. (p.18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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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해수 평론집『비평의 시그널』(포지션 비평선 001) 에서/ 2018. 5. 18. <포지션> 펴냄

  * 전해수(본명: 전영주)/ 1968년 대구 출생, 2005년 『문학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논문집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 평론집 『목어와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