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현순영 『응시와 열림의 시 읽기』(발췌) / 바람의 기원 : 김명철

검지 정숙자 2018. 5. 3. 13:36

 

 

    바람의 기원

 

     김명철

 

 

  향나무 밑둥치가 두 갈래로 갈라진 틈새에서

  백송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것처럼

  고전적인 일입니다

  당신에게 나의 눈빛이 닿았을 때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경건과 황홀과 우울한 표정을 지나

  당신의 몸과 내 뿌리의 전쟁

  바람이 북동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뀌어서 혹은

  새의 부리가 당신 가지에 걸린 탓도 있겠지만

  당신을 알고부터 난

  불가항력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향나무와 소나무처럼

  당신과 난 이질적이었고

  언제나 나는 햇살에 목이 말랐습니다

  나는 당신을 빨아들여 내 가지들을 길렀고

  당신은 이른 봄 새의 모가지처럼 수척해졌습니다

  바람에 당신이 흔들릴 때

  내 머리 위에 떨어지던 햇살들을 따라

  죽거나 산 내 가지들이

  목을 빼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의 바람처럼

  전쟁을 위한 평화나

  평화를 위한 전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는 바람의 의지였고

  나는 햇살의 의지였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내가 없이는

  바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향나무대로 소나무대로

  순응이나 제스처가 아니라

  정곡으로 가겠습니다

  내 갈라진 둥치에도

  바람 한 점이 떨어졌습니다

    -전문-

 

  「바람의 기원」에서 시인은  향나무의 밑둥치가 두  갈래로  갈라진 틈새에서 백송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본다. 향나무의 맡둥치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은 백송의 뿌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향나무와 백송의 공존은, 향나무의 몸과 백송의 뿌리의 전쟁이기도 하다. 백송은 향나무의 밑둥치가 갈라진 틈새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여 가지들을 기른다. 하지만 백송은 향나무 그늘 아래 있어 햇살을 볼 수 없다. 백송의 어떤 가지들은 그래서 죽기도 한다. 백송이 햇살을 볼 수 있을 때란 바람이 향나무 가지들을 흔들며 그 사이사이에 틈을 낼 때뿐이다. 그렇다면 백송이 좇아야 하는 것은 햇살 이전에 바람이 아닌가! 바람이 불어야만 향나무 가지들 사이에 틈이 생기고 백송은 햇살을 볼 수 있고 가지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바람이 있어야 향나무와 백송은 같이 살 수 있다. 즉 바람이 있으니 향나무와 백송도 있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 향나무와 백송이 없으면 바람도 없다. 바람을 향하는 의지는 향나무만의 것이 아니다. 백송이 햇살을 향하는 의지만 지녔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향나무와 백송은 '당신'과 '나'의 비유다. 시인은 「바람의 기원」에서 결국 '당신과 내가 없이는 바람도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 말은 '바람이 있어야 당신과 내가 있다'는 말과 논리적으로 같다. 시인은 마침내 바람을 추락과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 햇살을 보여주고 자신을 살게 하는 동인으로 인식한다./ 시인은 바람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사랑도 새롭게 인식한다. 그에게 사랑은 불가항력이자 서러운 순응이며 백전백패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바람을 새롭게 인식한 시인은 '순응이나 제스처가 아니라 정곡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순응이나 제스처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죽이거나 속이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에서 정작 사랑의 주체는 소외된다. 그렇다면, 정곡으로 가는 사랑이란 '나'와 '너'가 모두 주체가 되는 사랑,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리라. (p.p.p.187.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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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순영『응시와 열림의 시 읽기』(서정시학 비평선 38) 에서 / 2018. 1. 22. <서정시학> 펴냄

  * 현순영/ 제주 출생, 20013년 『서정시학』으로 펑론 부문 등단, 저서 『구인회의 안과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