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정과리 『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 어머니 : 이성복

검지 정숙자 2018. 3. 30. 21:51

 

 

    어머니

 

    이성복

 

 

  달빛 없는 수풀 속에 우리 어머니 혼자 주무시다가 무서워 잠을

깨도 내 단잠 깨울까봐 소리없이 발만 구르시다가, 놀라 깨어보니

어머니는 건넌방에 계셨다

 

  어머니, 어찌하여 한 사람은 무덤 안에 있고 또 한 사람은 무덤

밖에 있습니까

    -전문-

 

 

* 2연은 바로 그 안팎의 혼재성에 놀라 묻는다. 거기서의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은 "달빛 없는 수풀〔속〕의 어머니"와 '건넌방에 계신 어머니'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문면에서 그러할 뿐이다. 그 밑에는 좀 더 복잡한 존재들의 뒤엉킴과 다른 형식이 있다. 1연에 크게 두 개의 잠이 있으며, 그 각각의 잠 속에 다시 복수의 잠의 형식들이 있다. 큰 두 개의 잠 속에 다시 복수의 잠의 형식들이 있다. 큰 두 개의 잠 중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잠은 어머니의 잠이다. 그 잠의 시공간 안에는 삼중의 잠의 형식들이 겹쳐져 놓여 있다. 그 하나는 어머니의 악몽이며, 그 둘은 어머니의 잠깸이고, 그 셋은 나의 단잠이다. 어머니의 악몽은 어머니의 잠 속에 있고, 나의 단잠은 어머니의 잠의 밖에 있으며, 어머니의 악몽과 나의 단잠을 잇는 어머니의 잠깸은 어머니의 잠을 뒤집은 것이다. 하나의 시공간 안에 그것의 속과 밖과 역이 동시에 있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재배열된다. "소리없이 발만 구르시다가"는 어머니의 악몽이 단순히 꿈속만의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으로 무서운 사건에 관계되어 있고(그러니까 잠깸은 현실에 대한 각성이라는 의미를 풍긴다) 그 사건은 어머니뿐이 아니라 어머니와 내가 동시에 연루되어 있는 사건인데 어머니는 그 사건에 내가 눈 뜨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혼자 애태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 어머니의 악몽과 나의 단잠은 단순히 공존 · 대립하는 것에서 상관적 영향 관계의 항들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잠과 잠깸이라는 두 상호성 양편에 어머니의 악몽과 나의 단잠이 상호성으로 놓이는 형태가 생성된다. (p.p. 157.158)

 

   ------------

 * 정과리 비평집 『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에서 / 2014. 10. 6.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정과리/ 1958년 대전 출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여 평단에 나옴,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스밈과 짜임』(1988), 『글숨의 광합성』(2009) 외 다수,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