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현순영 『응시와 열림의 시 읽기』(발췌) / 케냐의 장미 : 한영수

검지 정숙자 2018. 5. 3. 02:07

 

 

    케냐의 장미

 

    한영수

 

 

  마을버스를 탄다 종점까지 간다

  전철을 탄다 종점까지 간다

  오늘 날씨는 영하이거나

  다시 영하일 듯하고

  나는 케냐로 가고 있는 중이다

  케냐의 장미밭에서

  내 손목은 까망

  장미 향기는 나를 감싸고

  온종일 허리를 숙이며

  내 이름은 노-바디

  내 목소리는 까망

  프라이팬이 볶은

  쥐눈이콩같이 까망

  일당 일 유로를 받아들며

  또는 애니바디

  날씨 덕분이지

  케냐에는 늘 장미꽃이 피고

  천만 송이 장미밭에서

  내 이름은 천만 송이

  새벽의 이슬

  꽃잎 위를 구르다

  다른 세계로 옮겨가지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가 먼저 귀화하지

   -전문-

 

   시인은 영하이거나 영하일 것 같은 날씨에 마을버스 또는 전철을 타고 그 종점까지 간다. 어쩌면,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전철을 타고 또 종점까지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케냐"로 간다. 케냐의 장미밭에서 시인의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는 차례로 "까망"으로 바뀐다. 특히 목소리인 "까망"은 프라이팬에 볶은 쥐눈이콩 같은 "까망"이다. 시인의 이름은 "노-바디"에서 "애니바디"로, 새벽의 천만 송이 이슬로 바뀐다. 천만 송이 이슬은 천만 송이 장미 꽃잎 위를 구르다가 또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 그곳에서도 시인의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가 먼저 귀화하리라./ 「케냐의 장미」에서 시인은 자신의 관념을 어떤 대상에 이입하여 표현하거나 자신의 생각 또는 감정을 고백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대상화한다. 마을버스에서 전철로 다시 케냐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가 차례로 "까망"이 되는 변화, "노-바디"에서 "애니바디"로  다시 천만 송이 이슬로  이름이 바뀌는 변화, 케냐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변화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클로즈업되는 것은 시인의 존재다. 시인이 자신을 대상화하는 이런 방식은 곧 시를 향한 시인의 열정을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케냐의 장미 밭은 "이국異國"의 정원"(「숨은 돌」)으로써, 현실의 종점을 통과해 닿고 싶은(싶었던) 시의 세계다. 시인은 그곳에서 손목과 발목과 목소리가 먼저 귀화할 것이라고, 특히 목소리는 프라이팬에 볶은 쥐눈이콩 같은 "까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목소리를 시의 열정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케냐의 장미」에서 시를 향한 시인의 열정이 감각적인 이미지를 얻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영하의 차가움에서 배태된 뜨거움. "까망"이고 콩콩 뛰는. (p.p.p.101.102.103.)

 

    ------------

   * 현순영 『응시와 열림의 시 읽기(서정시학 비평선 38)에서 / 2018. 1. 22. <서정시학> 펴냄

   * 현순영/ 제주 출생, 20013년 『서정시학』으로 펑론 부문 등단, 저서 『구인회의 안과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