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영구평화로의 접근_칸트 프리즈/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1. 5. 19. 01:16

 

 

    영구평화로의 접근

    -칸트 프리즈

   

    정숙자    

                                             


  시간에게 말해야 하네

  시간에게 미안했다고 말해야 하네

  고쳐 쓸 수도, 되돌려 닦아줄 수도 없는 시간에게

  행복으로 사용치 못한 사실을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말해야 하네

  ‘시간’에게는 어떤 배려도 없이

  툭 툭 불거진 고통에만 열중했었네

  시간 따윈 아랑곳없이, 정말

  시간 따윈 눈곱만큼도 아랑곳없이 

  마구 구기고 버리고 왔네 그리고는 잊어버렸네

  구불구불 뼈아픈 스토리는 기억하면서

  그 화염 아래, 혹은 뒤에서

  끽 소리도 못하고 무덤이 되어버린

  시간들에게 나는 포악한 권력자였네

  

  슬픔이 너무 깊어

  어깨만 건드려도 눈물이 떨어졌던

  시간에게 두고두고 (지금부터) 말해야 하네

  내 피눈물 뱉지 않았던, 과묵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간들에게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네

  말로써가 아닌 남은 인생 모두 기울여

  온몸으로 탑 한 송이 올려야 하네   

    -『애지』2011-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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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