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
정숙자
빛의 이동에 따라 평행이 달라진다
수직으로, 수직으로=서쪽으로, 서쪽으로 미세하게 옮
겨 앉는 세포의 그늘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속에 적나
라하다. 당혹스럽고도 낯선 굴절, 한참이나 계단을 내려
간 얼굴. 그 언짢은 초상의 측면은 늙음이 아닌 세월의 각
론이(었던 것)다.
아하, 그런데 목 주름살은
왜 자꾸 추켜올려지는 것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목주름은 턱에 매달린다. 하지만 아무
리 애원한대도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턱하니
내려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턱은 이미 한턱 베푼 셈! 내 목
에도 슬슬 주름이 끼어든다. 까닭인즉 신이 내 목을 쥐었
다는 것. 서서히 조이고 있다는 것. 결국엔 꽉 막히고 말
리라는 것.
딴은, 그렇게 구기지 않으면
하 오랜 경험과 경륜
지혜와 지식
승률의 노하우를 어찌하겠어
이 빽빽한 무림에 빛의 이동이 없다면 새내기들은 일어
설 틈도 못 찾을 거야. 내 젊은 날에도 위 세대가 그렇게
자리를 내줬던 거지. 늙음이란 참 따뜻한 언어였구나. 날
아드는 구김살 한 올 한 올이 하늘의 궁극의 은전이었어.
-『시와사람』2011-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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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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