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늙/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1. 9. 4. 22:22

 

 

   

 

    정숙자

                                                               


  빛의 이동에 따라 평행이 달라진다   


  수직으로, 수직으로=서쪽으로, 서쪽으로 미세하게 옮

겨 앉는 세포의 그늘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속에 적나

라하다. 당혹스럽고도 낯선 굴절, 한참이나 계단을 내려

간 얼굴. 그 언짢은 초상의 측면은 늙음이 아닌 세월의 각

론이(었던 것)다.


  아하, 그런데 목 주름살은

  왜 자꾸 추켜올려지는 것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목주름은 턱에 매달린다. 하지만 아무

리 애원한대도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턱하니

내려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턱은 이미 한턱 베푼 셈! 내 목

에도 슬슬 주름이 끼어든다. 까닭인즉 신이 내 목을 쥐었

다는 것. 서서히 조이고 있다는 것. 결국엔 꽉 막히고 말

리라는 것.


   딴은, 그렇게 구기지 않으면

   하 오랜 경험과 경륜

   지혜와 지식

   승률의 노하우를 어찌하겠어


   이 빽빽한 무림에 빛의 이동이 없다면 새내기들은 일어

설 틈도 못 찾을 거야. 내 젊은 날에도 위 세대가 그렇게

자리를 내줬던 거지. 늙음이란 참 따뜻한 언어였구나. 날

아드는 구김살 한 올 한 올이 하늘의 궁극의 은전이었어.      

   -『시와사람』2011-가을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