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실천이성에 얹힌 파니*_칸트 프리즈/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1. 5. 31. 00:59

 

 

    실천이성에 얹힌 파니*

    -칸트 프리즈

 

    정숙자

                                                     


  엉뚱한 데서 불평등이 보였다

  숫자로 표기되는 시간들


  정확히 60분을 산다. 그리고는 다음 시간에게 자리를 내

어준다. 그런데 유독 제 순번이 되는 순간 유령이 되어 버

리는 시간이 있다. 24시가 바로 그다. 24시는 허울뿐 1초

도 살지 못하고 0시에게 밀려난다.

  

  촌음이 아쉬우면서부터 나는 편지, 메모, 노트, 엽서,

책, 헌 종이로 만든 봉투 등에 연월일시분을 기입하는 버

릇이 생겼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시간. 나와 함께 한 그 시

각을 사인해 두는 행위야말로 우정이요 사랑이며 기념비

라고 찜한 까닭이다.


  하여, 24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 착안

  ……00:30까지 ‘0시’ 표기를 유보키로 함


  예). “(손질)2011.3.3-24:10/헌 종이에 생명을-” 간

밤에 뒤집어 붙인 잡지봉투 뒷면의 한 줄이다. 언제부터

그래왔던가. 그 정언명령 실천 이후 나는 시간의 분배로

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도덕을 ‘0시’인들 싫어하랴.  


  * 파니: 하는 일 없이 밴둥거리며 노는 모양

  이런 짓, 이런 때 달도 높이- 환히- 파니-  

    -『리토피아』2011-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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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