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저 제비 물결 찰까 두렵네/ 임무정

검지 정숙자 2018. 1. 21. 01:20

 

<수필>

 

    저 제비 물결 찰까 두렵네

 

    임무정

 

 

  *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어, 동요하지 않음이 마음의 근본이다.

  * 몸가짐은 공손히, 남과의 사귐은 경건하게 하라.

  * 스스로의 힘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자포자기다.

  *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 일상생활에서 언동言動에 보편타당성이 있으면 잘못이 없다.

 

  이상은, 퇴계 이황(1501~1570년), 휘는 황,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옹陶翁, 시호諡號는 문순공文純公, 관향貫鄕은 진보眞寶) 또는 진성眞城)의 어록 몇 가지를 현대어로 풀어 쓴 것이다.

  공맹孔孟 탄생보다 400여 년 늦게 탄생한 인류지성의 한 획을 긋는 사상가, 철학자, 문필인의 한 분인 퇴계는, 다양한 전통문화의 보고인 안동의 온혜리에서 1501년 아버지 이식과 어머니 춘천 박 씨의 7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를 잃고, 12세에 숙부 송재공으로부터 논어를 배워 학문의 길을 열었다.

 

  "『논어집주』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틀림이 없었으나, 칭찬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으셨다. 내가 학문에 게으르지 않는 것은 숙부께서 가르치고 독려하신 힘이다."(퇴계언행록』)

 

  "모든 사물에 마땅히 그래야 할 시를 이라고 합니다."

 

  그때, 퇴계가 발견한 화두話頭는 이였다. '이'에서 사물의 이치나 법칙을 추구하는 이학理學의 씨앗이 파종되고, 주자의 '성즉리(性卽理-본성이 곧 이) 이성과 도리, 이치를 가리키는 이학(理學)인 것이다.

  세계적인 학풍 퇴계학은 특히, 일본 유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어, 퇴계는 공자, 맹자 다음의 성인 이자理子로 받들어져 『퇴계전서』를 『이자전서李子全書』로 간행한다.

 

  고운 풀 이슬에 젖어 물가를 둘렀는데

  고요한 못 맑디맑아 티끌 하나 없네

  뜬 구름 지나가는 새는 비추는 것이지만

  날아가는 저 제비 물결 찰까 두렵네

 

  퇴계가 18세에 고향 가까운 연곡에서 지은 시다(『퇴계언행록』). 이사상이 진일보하여 마침내 천리天理를 깨달았음을 엿보게 하는 탁월한 시인의 달관과 관조의 경지이다. 시인 퇴계의 조선시단 데뷔의 처녀작으로 현대시로서도 절정에 이른 명편 시다.

  안개와 놀을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은 도산서원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냇가로 평가한 '추로지향(鄒魯之鄕 - 맹자의 추나라, 공자의 노나라의 고장)에, 1561년 61세의 퇴계가 지은 서원으로, 선조가 한석봉 친필의 현판을 하사한 사액서원이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 존속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퇴계는 제자 368명, 『도산급문제현록』을 남긴 교육자, 사상가, 철학자로서 90종의 관직을 140회 임명받고, 19회 사퇴 신고를 하고, 110여 공직을 맡아 나라에 헌신, 봉사한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자 시인으로, 서양철학의 칸트보다 200여 년 앞선 인간주의 생활철학을 완성한 대선정(大先正 - 선대의 큰 현인)임을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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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인』2017-겨울호 <수필> 에서

  * 임무정/ 1994년 작품활동 시작, 수필집 『당신 뜨락의 별빛 그림자』『시혼이 깃든 명시의 고향』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