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고 정태범 교수 일주년 추모제/ 허윤정

검지 정숙자 2018. 1. 16. 02:21

 

 

    정 교수 일주년 추모제

    -반백년을 함께 한 남편을 향한 연가

 

    허윤정

 

 

  이른 새벽, 부엌엔 벌써 이모님과 손님으로 오신 장금정 여사가

  김밥 20인 분과 과일, 커피와 차를 끓여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다.

  정 교수 첫 기일 추모제를 위한 지리산 내원사로 가는 준비는 완벽했다.

 

  우리는 승용차 2대로 딸네 가족과 함께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했다.

  딸네도 과일, 간식과 함께 터미널 꽃시장에서

  싱싱한 장미꽃다발도 사왔다.

  작은 아들 가족은 외국에 있어서 함께하지 못한다.

  정 교수가 그들을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첫 새벽에 출발을 했는데도 고속도로는 벌써부터 밀리기 시작했고

  안개까지 자욱하다. 가끔은 차창에 비가 뿌려지는 듯도 했다.

 

  톨게이트를 지나서는 도로가 뚫려 인삼랜드 휴게소에 잠깐

  쉬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가족과 장금정 여사 등 모두 10명이다.

  우동 5그릇과 집에서 준비해온 김밥과 과일, 커피, 차를 풀어놓으니

  어느새 그곳은 간이 파티장이 되었다.

  집에서 준비한다고 고생은 했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오전 9시 30분에 산청군 삼장면에 있는 내원사에 도착했다.

  천도제를 지낼 모든 준비를 해 놓고 스님 세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교에서의 천도제는 죽은 영혼을 좋은 곳,

  즉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의식이다.

  천도제는 10시에 시작되었다.

  1부가 끝나고 학춤의 명인인 지홍 선사의 씻김굿 춤을

  49재에 이어 다시 보게 되었다.

  정 교수는 그분의 술잔도 받고 스님들 염불 소리도 들으며

  아무 말이 없다.

  정 교수도 홀연히 하늘에서 내려와

  저 학춤과 바라춤을 바라보고 계시리라.

 

  정 교수는 내원사 석불 비로자나불의 문화재 등재를 위하여

  옛 신라시대의 절터를 찾으려고 겨울 지리산을 몇 번이나 올랐다.

  여름이면 우거진 풀숲으로 인하여 찾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

  그 절터를 찾아 수십 번을 오르내렸고,

  결국은 문화재 등재까지 마쳤다.

  불과 작고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이제는 성지순례로 지정도 되어 유명한 사찰로 빛나고 있다.

  그의 댓가 없는 잔잔한 선행을 저 비로나자불은 알고 계시리라.  

 

  돌아오는 4월 9일은 성모제라 이름하여 비로자나불 문화재 등재

  축제일로  정하여 영남일대의 큰 행사로 준비하고  있었다.

  정 교수 추모행사가 끝난 햇살 좋은 절 마당에서는

  장금정 여사의 <봄날은 간다>의 간드러진 노래와

  지홍 선사의 춤판이 어우러졌다.

  그가 가시는 길에 꽃비가 흩날리겠다.

  주지 영산 스님은 차 트렁크에 취나물 등속과 사과 제물을 실어 보낸다.

  정 교수는 가셨어도 우리는 기쁜 낯으로 그 사찰을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고향 집터를 둘러보았다.

  갑작스레 집짓는 계획이 변경되었는데

  미리 정 교수가 정해둔 넓은 땅에다 정식으로 집을 짓기로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계획이란 수시로 변동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벌써 매화꽃은 꽃멍울이 부풀고 꽃잎의 개화가 시작되고 있다.

  화려한 봄날은 개방이 임박했다.

  귀경길 우리는 조금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주말 교통체증에 감금되었고 많이 지루했다.

  미리 예약을 해둔 방배동 음식점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가족모임의 진지하고 정 깊은 이야기에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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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집 『그대 손 흔들고 가는 꽃길에』2017. 12. 15. <황금알> 펴냄

  * 허윤정/ 경남 산청 출생, 1977-1980년 『현대문학』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 『빛이 고이는 잔』『꽃의 어록語錄』외, 시조집 『겹매화 피어있는 집』, 동시집 『꼬꼬댁 꼬꼬』, 금속 활자공판 시선집 『거울과 향기』, 영어 번역 시집 『Some Where in the Sky』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