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경계에 선 자의 미소/ 신철규

검지 정숙자 2018. 1. 8. 02:11

 

 

    경계에 선 자의 미소

 

    신철규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을 보았을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앳된 얼굴과 미소이다. 시원하면서도 세련된 곡선을 보이는 눈썹과 두 눈썹이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오똑하게 솟은 콧날은 기품을 느끼게 한다. 끝이 약간 올라가 있어 교태를 띠면서도 편안하게 감고 있는 눈, 도톰하게 살이 오른 볼, 상대적으로 아담한 입술, 관능적인 여성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이 불상은 전반적으로 범접하지 못할 경건함과 숭고함을 품고 있다. 

  오른발을 왼쪽 다리의 허벅지에 살짝 걸쳐놓고 왼손으로 부드럽게 누르고 있는 반가半跏의 자세는 편안하게 보이면서도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돈다. 오르쪽 팔꿈치는 책상다리를 한 오른쪽 대퇴부를 지그시 누르면서 오른손의 검지를 오른뺨에 살짝 대고 있으며, 왼팔은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듯 편안하게 보인다. 작위적이지 않은 이러한 자세 때문에 어깨의 곡선은 부드럽고도 날렵하다. 몸통은 가늘고 전반적으로 근육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상체는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   번뇌도煩惱道 · 업도業道 · 고도苦道   를 나타내는 세 개의 목주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다른 불상들과 달리 가사를 걸치지 않고 소박한 목걸이 하나로 상반신을 장식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매끄러우면서도 단순하게 처리된 상반신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손가락의 세밀한 재현이다. 오른뺨에 검지를 대고 있는 오른손의 각 손가락들이 모양을 달리하여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왼손 또한 각각의 손가락이 구부러진 모습이나 손끝의 뭉툭함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완만한 곡성이 주로 표현된 상반신과 달리 하반신을 두르고  있는 옷의 자락은 상당히 화려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통일감과 질서를 느끼게 하는 양식화된 주름을 보여주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이 불상에 새겨진 주름은 선이 굵고 입체적이다.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바로 발가락이다. 특히 오른발 발가락은 다른 발가락과 달리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사이가 벌어져 있으면서 엄지발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약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정직인 자세와 달리 일종의 장난기마저 느끼게 해준다. 왼발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차분하게 놓여 있으면서도 투박한 모양새 때문에 굳건하다는 인상을 준다.

  상반신의 부드러움과 가벼움은 하반신의 강인함과 무거움이 상호 작용하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것 같으면서도 사유를 함부로 깨트리지 않는 초연함을 이 불상은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더 오묘하게 만든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지닌 아름다움의 특색은 사색하는 부처님으로서의 깊고 맑은 정신적이 아름다움이 인체 사실寫實의 원숙한 조각 솜씨와 오묘한 해화諧和를 이루어 주는 데에 있다.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같이 보이지도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인자스럽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 하는 어휘들이 모두 하나의 화음으로 빚어진 듯 머릿속이 저절로 맑아 오는 것 같은 심정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부처님이 중생에게 내리는 제도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최순우,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2, 116쪽.)

 

  웃음과 울음, 너그러움과 슬픔 등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 불상의 미소는 초탈과 속세 사이의 경계에 선 석가의 상황을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가사유상은 불전佛典의 내용 중에서 석가가 태자였을 때 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가 어느 날 궁전 밖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고통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인생에 무상함을 느끼고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중생들은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태자 사유상太子思惟像에서 유래된 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서 그 웃음을 다시 바라보면, 일견 장난기 가득한 그 웃음 속에서 자신의 갈등을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체념마저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면에는 번뇌로 들끓고 있지만 그것을 외부에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참아내는 견인의 정신,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육체의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직시하고 보듬을 수 있는 관용의 정신이 저 차분하면서도 다부진 입매에 서려 있다. 자신의 안락과 타인의 고통이 무관하지 않다는 깨달음, 물질적인 안락만으로는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쓸쓸함이 그 미소에는 배어 있다. 나와 너, 정신과 육체, 생각과 실천의 경계에 선 자의 웃음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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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실』2017-겨울호 <시인의 아케이드>에서

*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