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문화의 도시 바르셀로나
신환철
모로코와 스페인이 여행 막바지에 바르셀로나에 들렀다. 스페인의 동북부에 있는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독특한 건축물로 이름이 높다.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바르셀로나를 다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가득하다. 처음으로 그의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는 100년이 넘는 건축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현대적인 그의 감각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인 "까사 밀라"는 연립주택을 물결치는 모양으로 형상화한 굴곡 있는 건물로 당시에는 분양이 안 되어 건축주 밀라만이 묵었지만, 지금은 입장료를 받는 명소로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가우디가 자연을 사랑하여 만든 구엘 공원 역시 고급 주택 등을 지어 분양하려 하였지만 당시 부자들의 외면으로 실패하였다. 후에 시정부에서 전체 부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여 오늘날에는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랜드 마크는 단연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일명, '성 가족 성당')이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이는 가우디가 1882년부터 그가 교통사고로 죽은 1926년까지 심혈을 기울여 지었던 최후의 걸작품이다. 건물은 가우디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 건축가들에 의해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지금도 건축 중에 있다. 스페인에는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그 위에 기독교 문화를 융합한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다양한 양식의 중세 성당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40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나에게 스페인에서 마주친 성당들은 성지순례와도 같았다. 리스본에서 처음 만난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이 15-16세기 "대양의 시대를 이끌어 갔을 당시 누렸던 영광을 반영한 마누엘린 건축양식을 사용한 건축물로 칭송받고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가장 큰 건물로 이곳에는 이슬람교도로부터 세비야를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한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또한 대성당에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는 묘가 있다.
반면에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의 수도였던 페스와 현재의 수도인 라바트, 그리고 대서양 연안에 있는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회교사원인 모스크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독교문화가 이슬람을 몰아냈던 16세기 말까지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남부를 800년 이상을 지배하였던 이곳에는 회교 사원에 기독교 문화가 혼합된 성당건축물이 많으며 그 대표적인 건물이 메스키타 회교사원(코르도바 대성당)이다. 로마, 고딕, 비잔틴, 시리아, 페르시아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칼리프 스타일의 메스키타 회교 사원이 기독교 탈환과 더불어 성당으로 거듭난 것이다.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는 톨레도 대성당은 1493년 완공된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양한 건축문화를 수용하여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톨레도 성당은 중앙에는 면죄의 문, 오른쪽에는 사자의 문, 왼쪽에는 시계의 문이 있으며, 이는 현재 건축 중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 성당의 건축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성당 내부에는 22개의 예배당이 있고 신약성경과 성도를 주제로 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보물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페인 중부 아라곤의 수도 사라고사에는 필라르 대성당이 있다. 화려한 타일 장식을 갖춘 둥근 지붕이 11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필라르 성당은 옛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온 야곱에게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특히 이곳은 고야가 그린 프레스코 천장화 "레지나 마르티아"로 유명하다.
고대 로마와 중세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를 거치면서 건축되고 증축되었던 성당들이 오늘날 문화유산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단절과 파괴가 아니라 이질 문화의 포용과 더불어 유적의 보완과 계승에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수없이 이어졌던 전쟁과 왕조의 몰락, 그리고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이전 문화의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접목하여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 위대한 문화의 창조로 이어져 온 것이다. 문화도시란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을 자산으로 삼아 재창조해 나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이다.
오늘 날 바르셀로나가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명성도 있지만 가우디 이전의 일데폰스 세르다(1815-1876)라는 토목기사가 1859년에 세운 도시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시의 한가운데 카탈루냐 광장에서 성가족 성당과 카가 바요트 등 가우디이 건축물을 찾아가다 보면 사방에서 들어오는 풍경이 반듯하다. 차도와 그보다 3배나 되는 듯한 넓은 인도가 시원스럽고, 건물 대부분의 높이가 6층을 넘지 않아 스카이라인이 말끔하다. 건물의 앞면은 일직선으로 맞춰져 있어 들쑥날쑥하지가 않다. '에이샴플라(Eixample)'라는 세르다의 도시계획안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시가지를 반듯하게 정사각형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에이샴플라를 가로지르는 디아고날(대각)이라는 이름이 대로가 직선으로 관통하면서 만들어진 정사각형의 만싸라(Manzana)가 바르셀로나에 600여 개나 된다.
"가우디는 세르다가 마련한 공간에 몇 개의 점을 찍었을 뿐"이라는 말대로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한때 모더니즘의 시대를 풍마하였던 바르셀로나도 프랑크 독재정권 하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바르셀로나가 프랑크 정권이 몰락하고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회복한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도시디자인 정신이 되살아났다. '80년대 세대'로 불리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정치가들이 도시 재생에 나서 구시가지 라발지구의 오래된 건물 등을 재생하고 문화시설을 유치하면서, 지금 이곳은 젊은이들이 붐비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람을 위하는 공공디자인 정신은 바르셀로나 도시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건물 안은 주인 마음대로 고칠 수 있지만 건물 외벽은 아무것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은 건물 밖은 그것을 보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100년 전 가우디가 건물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오늘날 세계인의 인기를 끌게 될 줄 몰랐으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바르셀로나의 열린 정신과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문화도시로 만든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기존의 전통을 보존하고 상대의 다름과 특수성을 인정하며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어가는 포용정신이 도시를 창조해 나가는 힘이라는 사실을 스페인의 중세도시와 현대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얻게 된 교훈이었다.
여행 마지막 밤(9월 30일),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인 고딕지구와 번화한 도심지 말부라스 거리, 그리고 해변가를 걷는 야간투어 중에는 카탈루냐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마주쳤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카탈류냐 자치정부가 중앙정부에 막대한 세금을 내는 데 비해 예산지원의 부족 등,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언어도 다르고 역사와 문화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독립을 부르짖고 있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성공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던 역사와 문화의 자취들을 직접 눈으로 체험하고 느끼면서 받은 신건한 충격은 여행의 묘미이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고, 특히 마음의 부담이 없는 여행이라 다소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편안하였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아침, 12일간 여행기간 동안 내내 좋았던 날씨가 아침부터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201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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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279호 <散文>에서/ 2017.11.23. 펴냄
* 신환철/ 전주시 완산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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