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물봉선화/ 소선녀

검지 정숙자 2017. 10. 12. 02:00

 

 

<2017, 제4회 지평선문학상 수상작>

 

 

    물봉선화

 

    소선녀

 

 

  북채를 잡은 손의 놀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저런 몰입이 내게도 있었던가. 그런 순간은 언제였을까. 무엇을 할 때 저렇게 혼신을 다했던가. 주어진 일이라면, 적은 일 하나에도 온 맘을 다해야 하는데, 지금은 어영부영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물놀이는 구름, 바람, 비, 번개가 모여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인생살이가 그러한 것이려니, 쨍하고 해 뜨는 날만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북이 먼저 둥둥 구름을 일으키니, 징이 슬슬 바람을 몰고 오고, 장구가 좍좍 비를 내리고, 꽹과리가 번쩍 번쩍 번개를 친다. 일제히 소낙비와 강풍을 몰아 한바탕 쏟아내더니, 이내 잠잠해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구름이 몰려든다.

  북치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가슴이 저리다. 잦아든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 묻어둔 옛일이 문득 다가온다. 그리움에 빗댈 수 있다. 날라리나 꽹과리의 빠른 속도의 소리가 저 멀리 바람결에라도 들려오면, 공연히 들뜬 기분이 된다. 대금 산조나 시조 가락의 느린 호흡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반딧불이가 어두운 밤 꽁무니에 달린 불빛의, 깜박이는 명멸의 리듬으로 자기의 종족을 찾아내는 것처럼, 우리 것을 금방 알아내는 기막힌 감각을 가진 것이다. 이것을 논리로써 표현할 힘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고, 끼리끼리 잡아당기는 자력과 같은 것이다. 이유 없이, 그냥, 보아서 좋고 들어서 흥이 나는 걸.

  그렇게 그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이제는 자신을 챙기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그래서 주말이면, 어지간한 일은 뒤로 미루고 가까운 산에 가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물 한 병 들고 쉬엄쉬엄 걷는다. 가을산은 휑하다. 겨울 준비하느라 나무가 떨어뜨린 나뭇잎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다. 나무마다 윤곽이 뚜렷해졌구나. 밖으로 성장을 그치고 안으로 고부라지니 음영이 더 짙어지나보다. 몸이 영혼으로 무게를 옮기는 중이로구나.

  철이 든다는 것은 절기를 안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저 춥고 더운 날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지나면 꽃이 진다는 것을 안다. 사람살이도 결국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속에 들끓었던 갈등과 욕심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서서히 가라앉는다. 지금 괴롭지만 곧 지나갈 테니.

  그런데 신은 왜 이렇게 인간을 단련시키는 것일까. 돈이 없어도 보고, 건강을 잃어도 보고, 전부를 걸어 매달린 일에서 실패도 경험해 보았다. 그것은 너무 외롭고 힘에 겨웠다. 그래서 인생길은 같이 가라는 것이겠지. 가장 좋은 동행은 상처를 받았던 치유자이다. 자신의 상처를 잘 소화시켜,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품어줄 수 있는 도량은, 아픈 상처를 딛고 일서선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다. 그렇게 포용하며 살라는 거지.

  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계곡을 따라 무성하던 물봉선 자리가 어느새 다 사그라졌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열렬히 꽃을 피워대더니, 시절을 따라 너도 갔구나. 꿀이 많아서 곤충들이 꼬이니 구설수도 많았겠지. 견뎌야 하는 고초가 있어서일까.결백을 증명하려는 듯 씨주머니를 터트려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인다. 자, 봐 속마음을. 이제야, 네 몫을 다한 것이냐.

  생의 년 수는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 가을이 허허로운 것은, 영혼의 순금을 묻어둔 채, 도금을 찾아 헤매기 때문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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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문학』2017-23호(1970년 11월 6일 창간) <제4회 지평선문학상 수상작>에서

  * 소선녀/ 2002년 『시와산문』으로 수필 부문 등단, 수필집『봄이면 밑둥에서 새순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