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
장재화
신라 42대 흥덕왕은 사랑에 관한 한 비운의 왕이었다. 왕위에 오른 지 겨우 두 달 만에 사랑하던 아내 정목왕후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흥덕왕의 재위기간은 11년. 그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오로지 먼저 떠난 왕비만 그리워하며 살았다. 궁궐의 수많은 궁녀 중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수발도 내시들이 들게 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신하가 앵무새 한 쌍을 선물로 바치자 흥덕왕은 앵무새 노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랜다. 얼마 후, 암컷이 죽고 홀로 남은 수컷이 애처롭게 울자 왕은 새장 안에 거울을 넣어주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암컷이 돌아온 줄 알고 즐거워하던 수컷은 그게 허상임을 알고는 더 슬피 울다 죽었단다.
왕비를 잃은 흥덕왕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왕은 앵무새의 애절한 모습을 보며 노래를 지었으니 곧 '앵무가'다. 그러나 제목만 전해올 뿐, 내용은 실전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절절한 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할 뿐이다.
앵무새가 죽은 후, 더욱 외로움에 빠진 왕을 보다 못한 신하들이 후비를 들이라고 권유했지만 단호하게 거부한다. "새도 제 짝을 잃은 슬픔을 못 이겨서 괴로워하는데, 하물려 현숙한 아내를 잃은 내가 어찌 새로 장가를 들겠는가."
왕은 세상을 떠나면서 "나 죽은 뒤 왕비와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이 능에 왕비와 같이 묻혀서 못다 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해서 흥덕왕은 역사상 가장 아내를 사랑한 왕으로 흠모 받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에 자리한 흥덕왕릉을 찾았다. 봉분을 둘러싼 십이지신상 문인석과 무인석. 네 마리의 돌사자가 호위하듯 버티고 있는 흥덕왕릉은 왕비와 합장한 탓인지 신라의 왕릉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왕릉을 더욱 운치 있게 꾸미는 것은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늙은 소나무에 몸을 기댄 채, 주름지고 갈라진 표피에 귀를 대어본다. 현실일까 환청일까. 신기하게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도 들린다. 흥덕왕이 사랑하는 아내의 귀에 속삭였음직한 사랑의 밀어도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음미하며 다시 걷는다. 그러다가 발을 멈춘다. 왕릉 옆에 놓여 있는 사랑초 꽃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흥덕왕릉과 사랑초… 왕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한 누군가가 가져다 둔 모양이다. 사랑초의 꽃말은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다. 참으로 흥덕왕과 왕비의 아름다운 사랑에 걸맞는 꽃말 아닌가.
우리 집의 작은 베란다. 화분에 심어둔 사랑초가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아파트 출입문 옆에 줄기며 잎이 시들어버린 초라한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안쓰러워서 집에 가져와 돌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거칠고 메마른 흙을 버리고 자양분 가득한 새 흙으로 갈아주자 죽어가던 잎에 생기가 돌더니 땅을 헤집고 새싹도 움튼다. 작은 보살핌이 새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뿐이랴. 하트 모양의 잎 사이로 실낱같이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 오르더니 그 끝에 창백하리만큼 옅은 분홍색 꽃이 피어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꽃에 비해 검붉은 잎은 투박하고 억세다. 마치 연약한 꽃을 보호하겠노라고 다짐하는 호위무사 같다. 사랑은 지켜줄 수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니까.
사랑초는 사철 꽃을 피워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사랑이란 늘 한결같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 같이. 그렇다고 해서 꽃과 잎이 언제나 풍성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딴꽃으로 관심을 돌려 외면하기라도 하면, 시무룩해져서 꽃도 잎도 볼품이 없어진다. 그러나 다시 주의를 기울여 돌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풍성해진다. 그 모양새가 권태기에 이른 부부 같다.
권태기, 가끔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티격태격 다투고, 토라져서 돌아눕고, 더러는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몰랐던 상대의 결점을 발견하여 실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단점을 들추어 탓하기보다는 나의 장점으로 너의 단점을 덮어주면 또 어떨까. 그러노라면 서로에게 지워진 짐이 한결 가벼워질 텐데. 사랑의 자양분은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권태기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새삼 서로를 알아가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혼인 날짜까지 잡아둔 사이였지만 내가 아내의 손을 처음 잡아본 것은 결혼 일주일 전이었다. 그때도 아내는 고개 숙인 사랑초처럼 부끄러워했다. 그렇다. 사랑은 그렇게 수줍음에서 시작하는 것. 수줍음에서 시작하여 기쁨으로, 또 기쁨에서 행복으로 이어가는 것이 사랑의 방정식이다.
결혼 45주년이면 산호혼식이란다. 산호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일 게다. 그날을 맞아 지나온 날을 돌아본다. 넉넉할 것도 초라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때로는 그런 삶이 지겨워서 짜증내던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우리를 철들게 했다. 그래서 요즘은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 서로 아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속에서 산다.
뱀사골에서 열린 고로쇠축제. 축제에 참석한 아내와 나는 지리산 깊디깊은 곳에 숨어 있는 와운 마을을 찾아, 천년을 같이 살았다는 부부송夫婦松 가지에 소원목을 매달았다. 그 나무 패널에 쓴 우리 부부의 소원은 '늘 오늘처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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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문학』2017-가을호 <수필>에서
* 장재화/ 2004년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수필 부문 등단, 시나리오「사격장의 아들」, 수필집『산정화』『들꽃 속에 저 바람 속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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