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말의 입구, 말의 출구/ 정영효

검지 정숙자 2017. 8. 25. 01:37

 

 

  <여행 에세이/테헤란>

 

 

     - 모스크의 문

    말의 입구, 말의 출구

 

    정영효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참기 힘든 때가 있었다. 페르시아어를 몰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의 적적함이 불안감을 만날수록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정확하게 풀어낼 수 없으면서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싶었다. 내 입장을 남에게 이해시키려는 욕심이 계속 밀려왔다. 그때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모스크를 찾았다. 모스크로 가면 무언가 나아지지 않을까? 조용한 곳에선 침착한 소리가 내게로 옮겨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결국 나는 세파살라sepahsalar 모스크로 향했다. 그러나 세파살라 모스크는 이슬람 학교 안에 위치해서 일반 관람객이 입장할 수 있는 문이 없었다. 막막했다. 답답한 마음에 모스크 주변을 돌다가 겨우 다른 문 하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그곳에 있던 관리인은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해주었다. 아주 반가운 문이었다.

 

  모스크 안에선 내 말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기둥과 벽면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 경건한 사람들과 차분한 내부가 머릿속 소음을 눌러주었다. 신자들의 기도를 방해할까봐 더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양보해야 그들의 기도가 깊어질 것 같았다. 말하는 시간보다 말없이 지켜보는 시간이 서서히 던져주는 단단함. 모스크의 문이 말을 다스리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문밖에서 가져온 고민이 문 안에서 정리되고 있었다. 바깥에서 나는 왜 그렇게 흔들렸을까? 참견 없는 광경에 내 모습을 맡기자 고요를 더 자세하게 경험하는 듯했다. 그 이후부터 모스크를 지날 때면 눈이 갔다. 문밖에서 문 안을 오래 들여다봤다.

 

  돌아보면 성당이나 교회, 사찰에 갈 때도 나는 비슷한 심정이었다. 가만히 듣고 천천히 바라본다면 문이 편하게 열린 곳에서 불청객이 되는 일은 없다. 저마다의 못적으로 사람들은 성역聖域으로 향하며, 문을 통과한 뒤에는 잠시 그곳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는 자는 보이지 않는 바깥에 사로잡히고 만다. 바깥의 일을 고민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성역은 난관을 단번에 풀기 위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세계를 모은 채 스스로 고민할 시간을 만드는 곳이다. 문제를 허용하며 반복해서 깊어보는 곳이다.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출구로 여기는 순간, 자신에게 들어가는 입구로 변하는 문이 성역 안에 있는 것이다. 남의 말을 이해하고 내 말을 참는 동안 나의 침착함을 발견하면서, 왜 내가 모스크로 왔는지 새기게 되었듯이.

 

  문은 손님을 먼저 반겨주고 마지막까지 배웅해준다. 사람을 기다리면서 뒤쪽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보듬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문을 궁금해하며, 닫힌 문이 언젠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만약 그때 세파살라 모스크의 문이 잠겨 있었다면 거칠게 떠도는 말을 참는 게 불가능했겠지. 엉뚱한 쪽으로 나는 말문을 열어버렸을 것이다. 덕분에 요즘은 말하는 법보다 듣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보다는 끝까지 들어보려는 인내를 배우는 중이다. 이곳에서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그래도 길을 묻거나 우연히 말을 나눌 일이 생기면 알아들을 수 없는 페르시아어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뜻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의도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서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외면해버릴 때 대화의 동기와 기회는 사라진다. 표정과 손짓으로 조금씩 다가서면 닿을 수 있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살았는지 돌아본다. 듣는 일보다 말하는 일에 익숙했고, 듣기 싫은 말을 함부로 넘겨버리는 일에 더 익숙했다.

 

  모스크는 페르시아어로 '마스제드'다. 나는 영어식 표현인 모스크보다 마스제드란 단어가 더 좋다. 마스제드라고 발음하면 호흡이 조금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테헤란에서 모스크는 대로 옆에 있기도 하고 골목 안에 있기도 하며, 규모가 큰 것도 있고 아주 작은 것도 있다. 종교와 생활이 가깝게 연결된 나라인지라 산책을 하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모스크가 보인다.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이다. 테헤란뿐 아니라 이스파한Isfahan, 시라즈Shiraz, 야즈드 Yazd에 가면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란에 온 관광객들은 대도시인 테헤란보다는 유적지와 우물이 가득한 이 도시들을 선호한다. 특히 사파비드Safavid 왕조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렸을 만큼 오랜 역사와 화려한 건축물을 간직한 이란의 대표적인 도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 이맘 광장Imam Aquare에 우뚝 솟은 셰이크 롯폴라 모스크Sheikh Lotfollah Mosque는 낮이나 밤이나 화려한 자태를 새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좋은 모스크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자신의 숙소에서 가까운 모스크로 가라고 말하겠다. 크기를 따지기보다는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편하게 찾아가기 쉬운 모스크가 제일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리로 통하는 문은 방문객의 정체를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나 문이 열려 있어도 자신을 더 열어야 천천히 모스크를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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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본다 13테헤란 『때가 되면 이란』2017.5.28 <(주)난다>펴냄

  * 정영효/ 페르시아어 이름은 석류를 뜻하는 아너르. 이란의 석류를 좋아해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해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 만들어졌을 때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 시절 테헤란로 인근에 잠시 살기도 했으나 비싼 월세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서른 살까지 이란에 대해 아는 건 축구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2년 이란 화가를 우연히 사귀게 되면서 이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란에 가보겠다고 마음먹었고 2016년에 비로소 계획을 실행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다. 시집『계속 열리는 믿음』을 냈다.